‘답습踏襲’이라는 말은 ‘전부터 해 내려오거나 있던 방식이나 수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따르는 것'을 말한다.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라는 의미로 답습이라는 말을 기억해 둘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역사歷史’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여 역사가 된 history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 historiai에는 ‘탐구探究’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조사해서 배우거나 아는 것’, ‘진리나 학문 따위를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는 것’이 탐구의 의미다.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지만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사’하거나 ‘연구’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역사 기술記述이 ‘조사’나 ‘연구’ 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제멋대로 해석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조사’나 ‘연구’ 일 것이기 때문이리라.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네 글자로 말해야 한다면 ‘권력투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흥망성쇠興亡盛衰’라고 말하고 싶다.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배반과 복수와 전쟁을 끝없이 반복하는 역사를 돌아보며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것이 ‘흥망성쇠’다.
‘흥망성쇠’의 과정에서 ‘권력투쟁’은 필연이었다. 역사에서 ‘권력투쟁’이 필연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탐구한 결과 역사가 권력투쟁에 따른 흥망성쇠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지금 ‘쇠’를 말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현 단계는 자본독점 권력이 성 할 대로 성해 이제 쇠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자본권력이 쇠한다면 그것은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결과여야 한다.
적어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적 탐구에 따르면 역사의 과정은 그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을 봤을 때 자본권력과 권력투쟁을 벌여 승리할 세력은 노동계급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권력을 위한 전쟁의 역사가 멈추는 날을 헤로도토스는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인 역사를. 결과를 말해주는 과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과정으로서의 역사는 권력투쟁의 역사이지만,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역사로도 보인다.
억압적인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역사, 자연과 인류 자신에 대한 앎이라는, 미지未知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인류는 권력투쟁의 전쟁이 멈춘 해방된 공존의 상태를 기획하기도 했을 것이다. 역사에서 권력투쟁이 필연이라면 미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은 필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밖에서 벌어질 소행성과의 충돌이라는 미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후재앙과 독점 자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풍요롭고 평등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풍요롭고 평등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은 중요해 보인다. 과정이 곧 결과라서, 과거가 담긴 지금이 곧 다가올 미래라서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하는 것일 테다.
'풍요롭고 평등한 삶'은 아주 새로운 가치가 아니다. 이미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존재했고 존재하는 미래이다. 하지만 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미래로 답습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우禹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잘못했거나, 어쨌거나 소중한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길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는’ 탐구의 자세를 갖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방향에 미약하나마 영향을 미치기 위한 기본자세로서 말이다.
2022.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