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연장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살해한 대통령들이 있었다. 그들이 국민들을 살해했지만 정치를 잘했다거나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을 찬양하는 국민들이 있다. 그 국민들은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대통령이 국민들을 살해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다.
나는 그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대통령이나 독재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들을 권력을 위해서 국민들을 살해한 살인자들로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이 국민들을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잘했다거나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에 찬양하는 국민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잘 하기 위해서 경제성장을 위해서 대통령이 국민들을 살해할 수도 있다.” 나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역사의식이나 윤리의식을 말하기 이전에 나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고 있다. 나의 상식이 부족한 것인지 돌아보고 있다.
정치를 정말 잘 했느냐, 경제성장을 정말 이루었느냐,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역사인식일 뿐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살해해도 되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래도 되는 상황이 있는 것인지 국민들을 살해해서라도 정치를 잘하고 경제성장을 이루면 찬양받아도 되는 것인지 돌아보고 있다.
-영진, 2021. 11. 11. <독재와 민주주의> 중에서
상식은 무엇이며, 기본은 무엇인가
현재 전 지구적인 상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극단적 이익의 시대’라는 상태, 오직 자국의, 혹은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상태는, 인류에게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상태 아닌가 싶다.
2,500여 년 전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서술하고 있는 인류의 상태 이후 그 정도와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늘 존재했던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상태 아니냐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인간들을 살해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온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상태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와 같은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상태가 상식적이고 기본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들의 ‘소통’이 있지 않았냐는 것이다.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글의 일부인 위의 글에서 묻고 있는 ‘상식’이나 ‘기본’과 같은 것들은 ‘소통’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권력자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기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상식과 기본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소통’을 통해서 상식과 기본을 그들과 다르게 형성할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것이다.
2025.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