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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 걸음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자율적 주체

by 영진

운동 선배로부터 국회의원 제의를 받은 대영은 자신이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해 왔고, 또다시 그런 약속을 하고 있음을 자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엇 때문인지. 무엇에 대해선지 알 수 없는 구역질이. 어쩌면 그 자신에 대해선지도 모를 구역질이 목구멍 안에 가득 차올랐다.” 스스로의 행위에 구역질이 나는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능력자들에게서 아직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을 “거기”라고 칭하며 달러 세는 낙으로 산다는 태호에게서도 ‘평등한 세상’에 대한 희망은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짚어내는 그의 ‘냉소’는 미국 혹은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이나 적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람들은 아무쪼록 자신을 달러로 체험해야해. 자신을 자신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헛된 환상으로 체험하고, 그 환상 속의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이 아닌 그 환상을 좀 더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그 환상에게 자꾸만 뭔가를 사줘야해. 그러기 위해서는 달러를 벌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팔아야 하고, 자신을 잘 팔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좀 더 그럴듯한 환상을 꾸며줘야 하고… 이 세상 굴러가는 방식이 그거 아니냐.”


태호의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대영의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여정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딸 윤경의 편지에 대영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윤경은 편지에서 자신이 아버지의 귀중품일 수 없으며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갈 수 있는 자율적 주체라고 말한다. 대영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손자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음을 의식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부끄러움을 통해 대영은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하영진, '부끄러움을 느끼는 희망', <춤추며 한 걸음> 56-58쪽.




춤추며 한 걸음 @하영진 - BOOKK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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