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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

by 영진

“우리가 이곳에서 베트남인들을 돕는 것은 모든 베트남인들이 마음속으로는 미국인이기 때문이다”라는 영화 <풀 메탈 재킷> 속 미군 대령의 말에서 그들에게 내면화된 미국우월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관념을 읽을 수 있다. 미국우월주의와 백인우월주의라는 이름으로 타자를 지배하려는 침략과 약탈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국가와 기업과 군대를 통해서 일상적으로 훈육되는 것이다.


그들은 타자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공존의 관계를 만들어 가기보다 타자를 지배하려고만 드는 태도를 훈육당함으로써 식민주의라는 야만적인 폭력을 일상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런 점에서 전쟁의 대리인들인 미국군인들 역시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그런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미국은 패배했다.


도대체 왜 그러해야 하는지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이 국가의 명령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내면화된 식민주의의 민낯인 것이다.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자신들을 침략한 미국이라는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목숨을 건 싸움일 뿐이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그 행위 자체가 부당할 수밖에 없는 침략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에 무슨 이념이 필요할 것인가.


미국의 베트남전쟁 패배는, 베트남인들의 미국에 대한 승리는, 미군 대령의 베트남인들에 대한 내면화된 이데올로기가 허상이었음이 드러난 결과이기도 하다. 원주민들의 자기 보존이라는 본능 혹은 이념이 침략과 약탈이라는 본능 혹은 이념을 이긴 것이다. 전쟁에 침략과 약탈 말고 무슨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 야만적인 전쟁이 계속되는 한 누구도 승자일 수 없으며 모두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영진, '전쟁을 위하여', <보라의 시간> 138-139쪽.




보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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