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명이냐, 경제냐

by 영진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경제위기의 원인인 자본주의의 지속 불가능성에 대해 밝히는 사이토 고헤이의 자본주의에 대한 대책은 ‘속도’와 관련이 있다.


‘생명과 안전’보다 경제 성장을 우선하는 전 지구적인 개발과 파괴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명이냐, 경제냐’ 하는 딜레마와 직면하면, 경기 악화를 이유로 근본적 문제 해결이 뒷전으로 밀린다”(지속278)는 것이다.


사이토 고헤이는 “대책을 늦출수록 더욱 큰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 물론 인명도 잃을 것”(지속278)이라고 쓰고 있다.


사이토 고헤이는 늦은 대책도 문제지만 빠른 대책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2020년 중국, 유럽 각국, 한국이 코로나 위기에 빠르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폭력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을 휘둘러 위에서 억누르는 방식”, “도시를 봉쇄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감시하여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엄중하게 처벌한 것”, “개인의 사생활 노출을 감내하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감염 확대를 방지”한 것,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국가의 강한 개입과 규제를 전문가들이 요청하며, 사람들 역시 자유의 제약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지속279)




사이토 고헤이는 늦든, 빠르든 위기의 시대에는 최종적으로 국가권력이 노골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사이토 고헤이는 그 이유를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사회의 온갖 관계를 상품화하고, 상호 부조하던 관계마저 화폐⋅상품 관계로 바꿔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변화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상호부조의 요령도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가짐도 몽땅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위기에 직면해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이웃이 아닌 국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위기가 심각할수록 국가의 강력한 개입 없이는 자신의 생활을 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지속281)


그렇다면, ‘위기에 직면해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이웃이 아닌 국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위기가 심각할수록 국가의 강력한 개입 없이는 자신의 생활을 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이 이웃이 아닌 국가에 의존하는 것,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인가, 국가의 개입이 폭력을 야기하는 것이 문제인가.




만일, ‘상호부조 할 이웃공동체’가 건재해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면 위기에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을 것이고,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폭력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이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가에 의존하더라도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하더라도 국가폭력은 발생하지 않는 그런 국가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러한 가정들 앞에 놓인 오늘의 지구 현실은 이웃공동체도 非자본독재국가도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 앞에서 이웃공동체의 복원과 ‘노동자국가’와 같은 非자본독재국가를 ‘지금, 여기’에서부터 지구 곳곳에 세워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영진, '탈성장 코뮤니즘과 <자본> 다시 읽기, <춤추며 한 걸음> 151-154쪽.




춤추며 한 걸음 @하영진 - BOOKK 서점

춤추며 한 걸음 @하영진 - BOOKK 서점


알라딘: [전자책] 춤추며 한 걸음

[전자책] 춤추며 한 걸음 - 예스24


e북포털 북큐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세 무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