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존중’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실천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부터가 그렇다.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낮추고 다름을 수용하거나 때론 나를 포기하기까지 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해봐야 어쩌다 갑자기 위선자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존중을 말하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말하지 않아도 나부터 먼저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존중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존중을 말하는 것은 말이라도 하고 말을 함으로써 실천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존중은 끊임없이 추구하고 실천할 때 생명력을 가지는 가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은 흔한 것이 되었지만 다름이 틀림으로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도 흔히 겪는 일이다. 존중도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각자 다른 모두를 보호해줄 사회의 약속인 법제도를 만들고 지키는 일은 존중의 기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법제도가 높은 데 계신 기득 권력은 존중하면서 낮은 데 있는 국민들은 존중하지 않는 국가에서, 차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차별하는 국가에서 존중을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기득 권력의 불법과 차별이 당연한 일상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사는 일은 일상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일상은 일상적 삶은 중요할 것이다. 일상적인 삶을 법제도로 규제하는 것은 높은 데 계신 기득 권력이지만 그 분들이 저지르는 불법과 차별보다 일상에서 직접 부딪히는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차별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옆에 있어서 더 잘 알기에 편하고 친숙해서 ‘존중’하지 않게 되는 일도 많다. 친밀하고 당연하고 지속적이고 견고한 것이 일상이기에 당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 일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 일상적인 차별이기도 할 것이다.
해서, ‘나’부터 존중을 실천하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서로 요구하며 차별이 아니라 존중이 당연한 일상이 되도록 하자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삶을 소중한 일상을 지켜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존중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평온한 삶과 일상을 규제하며 파괴하려 드는 높은 데 계신 기득 권력의 불법과 차별로부터 우리의 존중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 모두의 평온한 공동체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2022.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