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상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이유는 우리 앞에 있었던 산업 사회 국면들에서 시민과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해 테크놀로지와 노동 여건에 대해 상류층이 좌지우지하던 선택에 도전했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 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일을 우리가 다시 해야한다. 좋은 소식은 자기공명영상, mRNA 백신, 산업용 로봇, 인터넷, 막대한 컴퓨팅 역량, 전에는 측정이 불가능했던 것들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 등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도구가 우리 손 닿는 곳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혁신을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놀라운 역량의 방향이 사람들을 돕는 쪽을 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현재의 방향은 그렇지가 못하다.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에도 아랑곳없이, 오늘날의 지배적인 내러티브는 250년 전 영국에서 지배적이었던 내러티브로 놀랍도록 가깝게 되돌아간 듯 보인다. 아니, 우리는 제러미 벤담, 애덤 스미스, 에드먼드 버크의 시대보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엘리트주의적이고 더 맹목적으로 낙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진보의 이름으로” 생겨난 고통에 또다시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진보가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진보”는 또다시 소수의 기업가와 투자자만 부유하게 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량과 권한을 박탈당하고 이득은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더 포용적인 새 비전이 생겨날 수 있으려면 사회의 권력 기반이 달라져야 한다. 19세기에도 그랬듯이, 그러려면 통념에 맞설 수 있는 조직과 반론이 있어야 한다. 널리 퍼진 비전에 도전하고 테크놀로지의 방향이 협소한 지배층의 통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19세기 영국이나 미국에서보다 오늘날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때보다 덜 필요하지는 않다.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진보란 무엇인가?’, <권력과 진보> 19-20쪽.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의 ‘진보’에 관한 규정들에 동의할 수 있다. 특히, 다음의 문장들이 그렇다.
“시민과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해 테크놀로지와 노동 여건에 대해 상류층이 좌지우지하던 선택에 도전했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 냈기 때문이다.”
“놀라운 역량의 방향이 사람들을 돕는 쪽을 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현재의 방향은 그렇지가 못하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엘리트주의적이고 더 맹목적으로 낙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진보의 이름으로” 생겨난 고통에 또다시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진보가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통념에 맞설 수 있는 조직과 반론이 있어야 한다.“
2025. 6. 6.
[출처]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 힘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