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고헤이가 ‘탈성장 코뮤니즘’의 다섯 가지 구상 중에서 다섯 번째 ‘주춧돌’이라고 한 것이 ‘필수 노동 중시’이다. “사용가치경제로 전환하여 노동집약적인 필수 노동을 중시하자”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만년에 생산력 지상주의와 결별하고 자연적 제약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이 점과 관련하여 최근 유행하는 자동화와 AI화에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강조하고 넘어가겠다. 일반적으로 기계화가 어려워서 인간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문을 가리켜 ‘노동집약적산업’이라고 하며, 돌봄노동은 그 전형적인 예다. 탈성장 코뮤니즘은 노동집약적산업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회의 방향을 전환한다. 그리고 그 전환에 의해서도 경제 활동의 속도가 느려진다.
우선 명백한 사실은 돌봄노동을 자동화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돌봄을 비롯해 소통이 중요한 사회적 재생산 영역에서는 획일화와 매뉴얼화를 철저하게 하려 해도, 필요한 작업이 복잡하고 경우의 수도 많은 탓에 늘 변수가 발생한다. 변수를 도저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는 전부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이야말로 돌봄노동이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생산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예컨대 사회복지사의 일이란 단순히 매뉴얼에 따라 식사와 목욕과 옷 갈아입기 등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상대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신뢰관계를 쌓는 동시에 사소한 변화로부터 상대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그때그때 유연하게 상대의 성격과 배경에 맞춰 대처해야 한다. 보육사나 교사의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특성 때문에 돌봄노동은 ‘감정노동’이라고 불린다. 벨트컨베이어에서 이뤄지는 작업과 달리 감정노동은 상대의 감정을 무시하면 엉망진창이 된다. 그래서 감정노동은 한 노동자가 돌보는 사람의 수를 두 배, 세 배 늘리는 식으로 생산성을 올릴 수 없다. 돌봄과 소통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봄노동을 받는 이들이 빠른 속도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돌봄과 간호 과정을 철저하게 패턴으로 만들어 효율을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돈벌이(=가치)를 좇아 노동 생산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면, 최종적으로는 서비스의 질(=사용가치)자체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기계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오늘날 노동집약적인 돌봄노동 부문은 생산성이 ‘낮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관료부터 현장 감독까지 관리자들이 노동 현장에 무리한 효율화를 요구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혁과 비용 절감을 단행하기도 한다.
-사이토 고헤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309-311쪽.
돌봄노동을 돌보는 데에는 ’생산성은 낮고 비용은 많이 든다‘는 관점에서 소홀히 하고 있지만, 생산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돌봄을 비롯해 소통이 중요한 ’사회적 재생산‘ 영역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고 안 될 것이다.
로봇이나 AI가 전부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앞으로 점점 더 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돌봄과 같은 필수 노동이라는 주장이겠다.
2025.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