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1세기 시대정신에 미달하는 상법 개정 내용>*이라는 글을 읽으며 ‘민주주의와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위 글은 입법의 핵심을 “주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 즉, “주식 소유자의 권익 강화”라고 쓰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회의 의무나 소액주주 권한의 강화는 주식회사제도에 담긴 나름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기 때문”에 “주주자본주의 등을 둘러싼 심각한 논의와는 별개로 오래전에 당연히 제도화했어야 할 내용”이라고도 쓰고 있다.
위 글이 쓰고 있듯이 민간영리기업인 주식회사를 놓고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에 대해 위 글은 “상장회사가 영어로 public company”이며, 이 단어가 “주식시장에서 소유권 증서가 공개적으로 거래된다는 사실 자체가 전에 없던 모종의 '공공성'을 전제함을 암시한다”는 점, “불특정 대중으로부터 자본을 모집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공유하며 리스크를 분담하는 기업 형태는 개인 소유 기업에 비하면 확실히 '공적'”이라는 점,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둔 '공공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다수의 주식 소유자를 아우르는 '공공성'의 차원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위 글이 쓰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주요한 의미가 ‘다수의 주식 소유자를 아우르는 ’공공성‘ 강화’에 있다고 한다면, 위 글이 말하는 상법 개정안의 주요한 ‘한계’는 그 공공성이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다.
다시 말해,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 내용은 주식회사를 주식회사답게 운영하라는 상식적인 조치들”이며, “개인을 넘어선 공적 차원이 출현하는 모든 인간 관계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이 주식회사의 이사회와 주주들 사이에서도 실현되어야”한다는 것이다.
한데, “지구자본주의가 전례 없는 복합위기에 빠져든 오늘날 우리가 확인하고 구현해야 할 '공공성'은 주식회사제도에서 기업과 주주들이 맺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일면적인 공적 관계를 훌쩍 넘어선다”는 점에서 “상법 개정의 정신은 21세기에 간절히 필요한 시대정신에 까마득하게 미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 글은 그 한계를 넘어설, 즉, ‘상법’상에서도 ‘사회 전체의 공공성’을 강화할, 기회가 이미 “80여 년 전 대한민국이 처음 시작하면서 맺은 약속”인 제헌헌법 제18조에 담겨 있었다고 쓰고 있다.
"제18조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제18조의 두 번째 문장은 본래 헌법 초안에는 없었다. 헌법 초안 작성을 주도한 헌법기초위원회의 유진오 전문위원은 의원들 앞에서 초안을 처음 설명하며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가 초안의 기본 정신이라고 밝혔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위하고 존중"하면서 동시에 "경제 균등을 실현"하는 것이 헌법의 이념이라는 것이었다. 이익균점권은 이 이념의 정확한 구현이었지만, 애초에는 초안에 없던 내용이었다.”
“이익균점권은 노동조합운동(반공 성향의 대한노총)과 연계를 맺으며 제헌국회에 진출한 전진한, 문시환 등의 의원이 제출한 수정안에 처음 등장했다. 원래 이 수정안은 이익균점권과 더불어 노동자 경영참여권도 포함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의 결성, 쟁의, 협상만으로는 노동자의 권익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이익을 균점할 권리까지 함께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이 수정안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한국민주당 출신 의원들이 자본주의 원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격하게 반대했다. (…) 결국 이승만 의장의 중재로 경영참여권은 빼는 대신 이익균점권은 받아들이는 타협안이 만들어져 이익균점권이 헌법 제18조에 담기게 되었다. 이 조항은 제2공화국 헌법에까지 이어지다가 5.16 쿠데타 세력이 제3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폐기된다.”
위 글은 영리기업에서 노동자가 "이익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짚고 있다.
“제18조의 둘째 문장은 소유주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기업의 이익 분배를 결정할 주체라 규정했다. 왜 그러한가? 기업은 소유자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생산(협의의 생산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포함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을 생산 공동체로 본다고 하여 소유자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산 공동체이기에 소유자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가장 먼저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노동자는 기업 소유주에게 고용된 단순한 '피고용자'가 아니다. 기업의 주인 중 일부이기에 당연히 이익의 일부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다.”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이익균점권 채택을 통해 ‘기업은 소유자들의 공동체’라는 원리를 크게 수정했다는 것이다.
“생산 공동체로 제 몫을 다하는 모든 기업은 기본적으로 주식회사제도가 전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지닌다. 생산 활동은 영리 추구라는 거죽 안에 늘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속살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기업이라는 공동체 안에 노동자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많은 주체들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생산이든 소비든 사회적 성격이 과거에 비해 극도로 강화된 현대 대기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최소한 소비자, 지역사회, 연관업체 등이 공동체의 경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최근 부상하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 기업론이 바로 이런 기업 지배구조를 주창한다. 주주만이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지역사회, 연관업체 그리고 주주 모두가 이사회 구성에 반영되어야 하고, 기업 운영 방향을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전체가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인 일부 경영 전문가들과, 국영기업 일색의 과거 사회주의 모델을 넘어서려 하는 탈자본주의 좌파 모두 이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미 80여 년 전 대한민국이 시작하면서 ‘민주공화국’임을 헌법 제정을 통해 공포했지만,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위하고 존중"하면서 동시에 "경제 균등을 실현"하는 것이 헌법의 이념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가속화하는 개혁의 내용적 실마리는 우리의 '과거 속 미래'에 있다. 대한민국이 처음 출발하면서 공동의 과제로 약속했지만 이후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의 세월 속에서 망각을 강요받아온 이상들 말이다. 그 가운데에 제헌헌법 제18조, 이익균점권이 있다. 상법 개정이 일단 가결된 지금이야말로 21세기의 조건에 맞는 이익균점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다.”
2025.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