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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

by 영진

미래에 AI가 있으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건 맞겠죠?


비즈니스적으로 도움 되는 것이 살아남겠죠. 공공 부분은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할 거고, 노인 돌봄 같은 것도 복지 차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그것도 국가가 돈을 지급하는 거니까요. 협력 관계에 있는 것은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ChatGPT가 과대평가되고 또 틀린 대답도 한다곤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에 선보인 어떤 인공지능보단 뛰어난 건 사실인 거 같습니다. 기계가 인간보다 답을 더 잘 찾는다면, 앞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더 정교하고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가가 핵심이지 않을까요?


기계의 발전이 인간을 궁지로 몰아넣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인간 대 기계와 같은 경쟁 구도와, 다른 한편으론 자본주의적 고용관계 때문입니다. 고용관계 없는 곳에서 기계의 발전은 인간을 궁지로 몰지 않아요. 인공지능과 협력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니까요. 그에 비하면 인간 대 기계의 경쟁 구도는 사소한 문제죠. 기계의 능력을 홍보하는 것과 관련된 허구적인 문제니까요. 자본주의에 기인하는 사태를 자꾸 기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태를 오해하게 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합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다면, 그렇게 되어도 별문제가 없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면 됩니다.




ChatGPT를 학습시키는 방식 중 하나가 문장 중간에 빈칸을 주고 그 안을 채우게 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학습되는 건 상식과 통념에 부합하는 능력입니다. 그게 강력해졌으니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능력이 크게 비약한 거겠죠. 그러나 그것만으론 뻔한 서사를 넘어서기 어려워요. 소설이나 서사적 예술은 현실적이면서도 또 너무 현실적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뜻밖의 이야기이지만 또 그럴듯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실제 산업 현장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제 지인이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인 미드저니Midjourney의 도움을 받았는데, 정말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았다고 해요. 그러한 예술 창작 분야가 문제일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대중가요의 표절 문제가 이제 AI 창작 문제로 옮겨 갈 것 같기도 하고요.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사실 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는,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을 따라가고 싶지 않지만, 그런 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ChatGPT는 인간이 준 명령에 답하고 인간이 준 과제를 해결할 뿐,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해요. 자신의 생존을 지속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필요로 하는 신체를 갖지 못해서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공지능에겐 답하는 능력은 있어도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질문이란 정해진 답이 없거나 알 수 없는 것 혹은 전에 생각지 못했거나 그동안 던져지지 않은 물음입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이 제대로 된 의미의 ‘사유’죠. 상식에 따라 판단할 때, 우리는 사유하지 않아요.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는 지점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답 없는 것에 대한 물음이 집요하게 던져지는 지점이죠.



-<선을 넘는 인공지능>, 이진경, 장병탁, 김재아 지음, 김영사 2023, 291-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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