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을 감속하는 만큼 탈 성장 코뮤니즘이 지속 가능한 경제로 전환을 촉진한다‘고 주장하는 사이토 고헤이의 ’탈성장 코뮤니즘‘을 위한 다섯 가지 구상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사용가치 경제로 전환’, ‘노동 시간 단축’, ‘획일적인 분업 폐지’, ‘생산 과정 민주화’, ‘필수 노동 중시’는 어느 것을 우선하든 각각의 구상이 ‘탈성장 코뮤니즘’을 이루기 위한 ‘주춧돌’인 셈이다.
사이토 고헤이가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경제로 전환하여 대량 생산·대량 소비에서 벗어나자‘, ’사용가치경제로 전환하여 노동집약적인 필수 노동을 중시하자‘고 주장하듯이, ’탈성장 코뮤니즘‘을 위해서 ’사용가치경제로의 전환‘은 다른 구상에 우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데,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 역시 「자본」에서 ‘사용가치’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간 단축이 “근본조건”이라고 했다“(300-301)고 주장하면서 ‘탈성장 코뮤니즘’의 두 번째 주춧돌로 ‘노동 시간 단축’을 제시한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활의 질은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용가치경제로 전환하면 생산 영역의 역학 관계도 크게 달라진다“(300)는 것이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에서 벗어나자‘, ’노동집약적인 필수 노동을 중시하자‘는 주장은 ’사용가치경제로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활의 질은 높이자’고 주장할 수 있는 전제도 ‘사용가치경제로의 전환’에 있다. ”돈벌이만을 위하던 쓸데없는 일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 정말로 필요한 생산에 노동력을 의식적으로 배분하게 된다“(300)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노동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300)는 것이다. ”노동 시간을 단축해도 무의미한 일을 줄인 것이라서 실질적인 사회의 번영은 유지된다. 실은 유지 정도가 아니다. 노동 시간 단축은 사람들의 생활에도 자연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300-301)
‘노동 시간 단축’이 ’사용가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근본조건”이라는 말은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불필요한 것을 생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겠다.
사이토 고헤이의 주장대로라면 자동화 덕분에 현대 사회의 생산력은 노동 시간을 단축해도 좋을 만큼 이미 충분히 높다는 것이고 노동 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여 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에서 자동화는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로봇의 위협’ 또는 ‘실직 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실직이 두려운 우리는 여전히 과로사할 만큼 필사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301)
이를 두고 사이토 고헤이는 “자본주의의 불합리가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에 비해 “코뮤니즘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GDP에 반영되지 않는 생활의 질 향상을 목표한다. 노동 시간이 단축되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육아와 돌봄이 이뤄지는 가정에서는 역할 분담이 수월해질 것”(301)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서,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불합리’를 넘어 ‘코뮤니즘’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현대 사회의 생산력은 이미 충분하니 노동 시간을 단축하자’, ‘자동화가 실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자’, ‘노동 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어 실직도 줄이고 삶의 질도 높이자’, ‘무분별한 생산을 줄이고 필요한 생산을 함으로써 사용가치 경제로의 전환도 이루자’, ‘환경도 지켜 내고 인류의 지속 불가능성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나자’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국가 혹은 공동체는 어디까지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한국의 현실과 문제의식을 담고 아래 글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문은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동화와 생산력의 증대, 기후 악화로 인한 탈 탄소 재생에너지 생산 사회로의 전환의 불가피성과 같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것만 같은 인류의 미래 역시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 발전의 한 과정일 뿐이지 않느냐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인류가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고 발전 과정에 따르는 고통을 완화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듯이, 사이토 고헤이가 주장하는 ‘감속주의’에 기반한 ‘탈성장 코뮤니즘’이 고통 완화를 위한 여러 해답 중에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체제 전환을 위한 노력 한편으로 전 지구적인 경제 양극화, 기후 악화, 전쟁 위협 속에서 점점 더 심화하고 있는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약자들을 돌보는 것,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해 나가는 것은 전 지구의 국가 혹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2025.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