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동시간 단축

by 영진

근로시간 단축은 단순히 '더 많이 쉬자'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인간답게 일하자',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자'는 집단적 선언이다. 하루 8시간제는 이러한 선언의 최소한이며, 그 기준을 더 낮추는 것이 미래지향적 진보다. 책상에 앉아 하루 9시간제를 실험할 명분이 아니라, 하루 8시간제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이를 공장과 사무실에서 더욱 단축하는 사회적 운동이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근로시간 단축을 추구하려면, '출근일수 감소'라는 피상적인 효과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총근로시간 감축', '임금 삭감 없는 단축', '노동강도 완화', '비정규직 포함 보편 적용'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 하루 9시간제는 이러한 원칙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하고, 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는 효과만 낳는다.


이 원칙이 결여된 주 4일제는 자칫 계층 간 격차만 확대하는 '선별적 단축'에 그칠 수 있다. 지불 여력이 있는 산업이나 업종에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혹은 노사가 단체교섭을 통해 자율적으로 주 4일제를 도입할 수 있겠지만,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분단을 심화시킬 뿐이다.


하루 8시간-주 40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가 노동조합법의 적용범위보다 좁은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만 하층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주 4일제를 주장하는 노동조합 일각과 고용 연구자들이 진정 '근로시간 단축'을 말하고자 한다면, 자본이 설정한 협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총근로시간 축소와 노동강도 완화를 목표로 한 장기적 로드맵, 비정규직을 포함한 보편적 정책 설계, 실질 임금 보장을 포함하는 제도적 구조가 함께 제시되지 않는 한, 하루 9시간 노동제라는 조삼모사 식의 주 4일제는 그저 이름만 진보적인 '압착근로시간제'일 뿐이다.


-프레시안, 2025. 5. 17. 기사 <주 4일제·하루 9시간제 실험, 누구를 위한 것인가> 중에서




주 4.5일제는 단순한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서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기후위기 등 체제 변화에 대응하는 조치로 거론되기도 한다. 김은기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2030년에는 업무의 90%를 인공지능으로 자동화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의 9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시간 상한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일자리를 나누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과 산업 구조 전반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탄소 중립 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촉진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김종진 소장은 “이미 유럽처럼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낮은 국가들은 단순히 개별 노동자들의 번아웃 해결만이 아니라 기후위기나 성평등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라며 “한

국에서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의제를 확장하고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노동계에서는 현재 주 40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바꾸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수라고 말한다. 김은기 정책국장은 “이재명 후보는 주 4.5일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하는데 일단 조건이 되는 데부터 먼저 하겠다는 취지로 생각은 된다. 하지만 자율에만 맡긴다면 가뜩이나 불평등이 심한 노동환경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법제화를 하되, 도입이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책적 보완책을 제시하는 방향이 맞다”라고 말했다. 김종진 소장은 “이재명 후보가 OECD 평균 수준으로 노동시간을 낮추겠다고 했는데 과연 기업 자율에만 맡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만약 자율적으로 하게 된다면 노조가 있는 15%의 기업만 하게 될 텐데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또 주 4.5일제 법제화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도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2025. 5. 17. 기사 <시기상조냐, 이미 온 미래냐···다시 뜨거워진 ‘주 4.5일제’ 논쟁>




"근로시간 단축은 단순히 '더 많이 쉬자'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인간답게 일하자',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자'는 집단적 선언이다. 하루 8시간제는 이러한 선언의 최소한이며, 그 기준을 더 낮추는 것이 미래지향적 진보다."


"진정한 의미의 근로시간 단축을 추구하려면, '출근일수 감소'라는 피상적인 효과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총근로시간 감축', '임금 삭감 없는 단축', '노동강도 완화', '비정규직 포함 보편 적용'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시간 상한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일자리를 나누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낮은 국가들은 단순히 개별 노동자들의 번아웃 해결만이 아니라 기후위기나 성평등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법제화를 하되, 도입이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책적 보완책을 제시하는 방향이 맞다”



2025. 5. 17.



주 4일제·하루 9시간제 실험,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기상조냐, 이미 온 미래냐···다시 뜨거워진 ‘주 4.5일제’ 논쟁 - 경향신문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보건의료시스템

노동자 생각

단속 추방 정책을 중단하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디까지 얼마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