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일본산고> 읽기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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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에 따르면 인류의 조건으로서 고독하더라도 ‘진실’을 향한,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언어의 몸부림으로서의 문학을 추구하는 일도 필요하겠다.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몸부림,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언어에서 떠나질 못합니다. 그게 문학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절, 거부하고 포기한, 극한적 고독의 산물이 <토지>였을 겁니다.”(일산 149)
<토지>가 그러했듯이 문학은 제국주의의 지배질서가 어떻게 우주의 균형을 무너뜨리는지, 땅을 인간을 파괴하여 인류재앙에 이르게 하는지 진실을 밝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신(神)에 의탁하지 않고 인간에게 맡겨진 자결권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해 나가면서도 우주 질서의 냉엄함을 깨닫고 명심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문명이 잘못 운영된 탓이지요. 만일에 우주변혁의 필연성이었다 한다면 이것도 아이러니에 속하는 것입니다만 자결권이 인간에게 있고 인간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신은 침묵하거나 다만 바라볼 뿐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떻게 우주는 이렇게 신묘하게 짜여 있는가 싶어요. 구원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 이외는 구원이 없습니다. 신에 의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고 불가능이 없다고 신을 밀어낸 자리에 선 인간들도 우주 질서의 냉엄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일산 152-153)
그렇게 인간에게 존엄한 자결권을 가지고 제국주의로부터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체제 변환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신(神)의 가호(加護)와 함께 험난한 전쟁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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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신봉,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의 일상화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어느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미국 같은 넓은 곳에서의 골프지, 유럽 쪽에서는 골프장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이건 해방 이후, 풍속도의 하나인데요.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다.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위정자나 식자들이 꺼내는 말인데 이런 사대주의는 이미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이 죽으면, 일본이 죽으면 따라 죽게 생겼어요.”(일산 151)
제국주의를 넘어서겠다면서 그들의 문화를 답습하는 것은 그들의 식민지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물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겠지만 무엇을 배울 것인지,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전통을 지켜가면서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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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건을 갖추어줄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지방자치에 대한 박경리의 논리는 분명하다. “단위가 적어지면 시민의식을 보다 잘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각 지방에서 제멋대로 놀고 있어요. 앞으로는 지방민의 감시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의식이 높아져야겠죠. 당연히 문화가 높아져야 의식이 높아집니다. 공해를 막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는 뿌리내려야 합니다. 바로 눈앞의 것을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일산 204)
박경리의 말에 동의하면서 의견을 덧붙인다면 각 지방이 제멋대로 놀고 있는 것은 구심점이 없어서 그렇다고 본다. 즉, 중앙이 엉망이라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중앙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 지방민의 감시 능력이 높아지기 위해서, 의식이 높아지고 문화가 높아지기 위해서,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 먹고사는 데 거의 모든 시간과 노동력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내고도 자기 주변의 환경을 돌볼 시간과 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축소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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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식과 환경’, 양자는 상호작용하며 상호 보완해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좀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상대적으로 의식이 높아진 이들이 경제적인 격차를 줄여나가는 데 솔선하거나, 돌봄 노동을 늘려나가는 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사회구성원 모두가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며 돌봄 노동을 늘려갈 수 있도록 빈부의 격차, 임금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임금의 격차를 줄임으로써 빈부격차를 줄여나가고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체제 자체의 변환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구심점으로서 중앙이 중심을 잡아줌으로써 지역이 풍요롭고 평등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럴 때 우려되는 중앙의 집중을 견제하는 것은 지역민의 역량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중앙은 하나이지만 지역은 다수라는 점에서 지역민들이 중앙으로 떠나지 않고 자신의 지역을 지키려는 자세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 지역민의 자세 자체가 이미 중앙을 중심에 두면서도 중앙에 집중되지 않을 수 있는 길, 중앙을 통해 지역을 살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결국, 중앙과 지역, 시민 의식과 환경, 이 모두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긴장과 조율 속에서 균형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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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는 지역 언론이 제대로 못한 게 많다고 질책하면서 지역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당부한다. “야합해서는 안 됩니다. 돈 있는 사람이 자기 사업에 언론을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지자체가 뿌리내리면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그러면 예전처럼 안 됩니다. 특히 문화와 환경문제에서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일산 204-205)
돈 있는 사람이 언론을 이용하는 것과 관계없이 언론을 대하는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성격을 띤 언론들은 존재의 근거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면서 시민의식을 높여주는 데 기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시민의식이 높아진다는 것은 결국 시민들이 ‘진실을 보는 눈’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 독립 언론(미디어) 자체가 그런 역할을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 자체에 대한 교육을 포함하여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는 교육 시스템을 견고하게 만드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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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는 2008년에 타계하셨지만 생전(生前)에 ‘일본론’을 집필할 계획이셨다고 한다. “앞으로는 실제적인 이론이 서는 일본론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우리 세대 지나면 쓸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두 번 입 못 떼게 철저하게 조사해 쓸 겁니다. 어중간하게 칼 뽑지는 않을 겁니다.”(일산 205)
또한 박경리는 생전에 자신이 거주하던 원주에서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좋은 아이들을 기르고 싶다고 했다. “학부생보다 적은 만큼 집에 데려와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은 애를 기르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또 그것이 의무라는 생각도 듭니다.”(일산 205)
‘일본론’의 집필과 대학원생들을 기르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민족을 넘어 인류의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두 가지 일을 해 나가는 것은 인류가 인류이기 위한 주요한 조건들일 것이다.
*박경리 <일본산고>, 다산책방 2023.
2022.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