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 사회 내 존재, 사회적 관계의 총체, 상호 의존적 존재, 연결된 존재’라는 규정들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의존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인지, 어디서부터가 ‘스스로 나서’는 자발인지, 굳이 자발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관계’를 이루게 하는, 관계를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 상호 ‘의존’이 어느 한쪽에 의한 ‘강제’, ‘타율’, ‘종속’을 야기한다면, 자율적이고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개체는 거부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그 감각적 반응은 의식적인 부정을 조직할 것이다. 그럴경우 ‘자발’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옮고 그름, 좋고 나쁨과 같은 가치 판단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에서 자율적이고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개체에 내재한 사회화 된 자발이 자본 및 국가 기구들의 권력화한 강제나 타율에 의해 ‘자발적 복종’이나 ‘자발적 폭력’과 같은 행위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겠다.
'자본독재' 아래 ‘의식’할 필요조차 없이 전자동 초연결 세계가 되어 감에 따라 ‘자발’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여긴다. 어떤 ‘자발’인가, ‘자발’의 내용과 성격이 중요해진다.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자발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자발의 가치’가 중요해진다고 여긴다.
-하영진, '자발하는 의존', <꿈꾸며 한 걸음> 108-109쪽.
위 글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에서 ’자발성‘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자발성‘인가, ’무엇을 위한 자발성‘인가와 같이 자발성의 성격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생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것 같은 ’자발성‘이 ’자발적 복종‘, ’자발적 폭력‘ 처럼 ’자발의 성격‘에 따라 오히려 ’의존을 강제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이나 위의 것에 속박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활하거나 활동함”, “나라나 단체가 완전한 자주권을 가짐”과 같은 뜻을 가진 ’독립‘은 어떤가.
’독립‘은 중요하지만 ’어떤 독립‘인가, '무엇을 위한 독립인가', 독립의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립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할까.
’독립‘이 ’고립‘이나 ’단절‘이라는 낱말을 떠올려 준다. ’독립적 고립‘, ’독립적 단절‘이라는 어구를 만들어 보지만 ’자발적 복종‘이나 ’자발적 폭력‘만큼이나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발‘이 더 나은 의존이나 공존의 관계를 위해 어떤 자발이냐, 무엇을 위한 자발이냐는 자발의 성격을 묻게 된다면, ’독립‘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이 되어 자주권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이미 ’자발‘이나 ’자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행위로 보인다.
2025.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