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사람보다 동물이 좋았다.
강아지를 간절히 키우고 싶었으나 없으면 더 좋았을 하나뿐인 동생이 아토피가 심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고양이가 반려동물로 인기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어 재수를 하게 됐다. 재수 때 만난 친구, 박원숭이라고 별명 지은 그녀의 집에 가서 종종 놀다가 자고 왔다. 박원숭이는 가족과 함께 고양이 셋을 키우고 있었는데 모두 그녀와 그녀의 동생이 어릴 때 길에서 주워온 아이들이었다. 그때만 해도 신기했다. 집에서 고양이를, 그것도 셋이나 키우는 이는 처음 봤기에. 박원숭이네 고양이들은 그녀의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내 발 밑에 은근히 앉아있다던가 등의 행동으로 고양이의 면역이 없던 나를 놀라게 했다.
재수가 끝났으나 원하는 학교에는 가지 못했다. 반학기만 놀고 휴학계를 냈으나 이미 대학생활의 향락에 젖어있던 나는 생활습관을 바꾸지 못했고 그대로 원 학교에 복귀하게 되었다.
첫 수능의 실패와 더불어 두 번째로 인생에서 큰 쓴 맛을 겪었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구나를 그때 깨달았다. 허망했다. 내가 원했던 인생이 아니었다. 나는 무언가에 깊이 빠지지 않으면 인생의 권태를 쉽게 느끼곤 하는데 그 당시 내가 선택한 건 종교였다.
하지만 종교도 나의 허무를 다 채워주진 못했다. 외대앞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문득 ‘천국이 그렇게 좋은 곳이라던데 지금 가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한국나이로 스물두 살이었다.
어느 날 <고양이 희나>라는 제목의 웹툰을 보게 됐다.흰고양이가 주인공이었는데 그 웹툰을 보고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내가 원했던 흰고양이는 터키쉬앙고라 단모종으로 그 당시 분양가가 40만 원 정도 했다. 용돈 받는 대학생인지라 분양가가 부담스럽던 차에 인터넷 카페에서 갓 태어난 아기고양이를 3만 원에 분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얼룩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나마 흰색이 섞인 얼룩고양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젖 떼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양이와 관련된 책과 인터넷 카페글을 탐독하며 고양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드디어 입양 당일, 친구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장소인 분당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분양자한테 문자가 왔다. 두 아이만 남았는데 둘이 너무 잘 지내서 떼어내기 미안한데 둘 다 데려가면 안 되냐는 내용이었다. 바로 거절 문자를 보냈다. 제가 학생이어서 둘은 못 키울 거 같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낸 후 마음이 쓰여 기도를 했다. 주님께서 알려달라고. 둘을 제가 책임질 수 있겠냐고.
주님이 명확히 음성으로 답을 알려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꾸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 형제들과 함께 지내다가 갑자기 낯선 인간과 단둘이 살아야 하는 그 아이가.
그래서 둘 다 데려가겠다고 문자를 해버렸다. 분양자는 그럴 거 같아서 둘 다 데리고 오고 있었다고 답이 왔다.(???)
고양이를 데리고 오고 싶다는 열망만 강했지 정작 물품은 하나도 준비 안 해서 이동장도 없이 가져간 가방에 눈을 감고 있는 손바닥만 한 아기고양이들을 담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전철 안에서 아기고양이들은 자신들의 운명도 모른 채 순진하게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집에 데리고 오긴 했으나 사료도 아무것도 없어 지금 생각하면 무책임하기 그지없이 참치캔을 물로 씻어 아기고양이들에게 주고 서둘러 사료와 모래를 사 왔다. 아기고양이들은 밥을 먹고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바로 발라당 누워 배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졸지에 두 아이의 집사가 되었고 그로부터 3개월 후에는 집 앞에서 원한 적 없으나 거부할 수 없는 선물을 줍게 되어 세 아이의 집사가 되었다. 아이들을 키운 이후로 매일, 가끔 빼먹는 날이 있더라도 꽤나 자주 기도를 했다. ‘주님이 주신 선물 소중하게 여길 터이니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다 누리다가 하늘에서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즈음에는 이 기도에서 한마디를 덧붙이고 있는데 ‘아이들이 아픈 곳이 있으면 다 제가 대신 아프게 해 주시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해 달라고.’
이때의 아기고양이들이 1월 31일이면 13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