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

by 두밧두중독현상

에세이를 즐겨 읽지만 언젠가 내가 글을 쓴다면 에세이보다는 아니 에르노처럼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쓰고 싶다.

그 이유는 에세이는 어쩐지 내 이야기를 온전히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법이 없어도 내가 에세이를 읽을 때 이 일화가 작가의 실화일 것을 기대하듯 나의 독자들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sns에 노출되어 있는데 어릴 때는 버디버디, 세이클럽, 싸이월드 등에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으로 매체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아바타와 홈페이지 꾸미는 것에서 피드 꾸미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sns를 즐기던 어린이는 sns를 즐기는 어른으로 자랐다.


현실에서는 내 모습 중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도 강제로 3D로 노출이 된다.

그러나 sns에서는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만 마치 2D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sns는 소설과도 같다. ‘나’를 소재로 쓰지만, 한 차례 가공된 결과물인 것이다.


사진도 가급적 깔끔하게 나온 걸로 고르고 색감도 전체 피드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조정한다.

이렇게 sns상에서 내 추구미로 나를 가장하는 것이 내 본모습이 아닌 꾸며낸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기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 따위는 한 치도 없다.

오렌지과즙 함량이 10%라도 오렌지주스로 인정받는 것처럼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곧 내 모습 중 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에는 “산다는 것은 엿 같은 일이라 그걸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당연히 누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까지 말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sns가 삶의 유희 중 일부라는데 그게 그렇게 나쁜가?


그리고 비단 sns뿐일까

실생활에서 우리가 보이는 모습은 “진짜”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도 회사에서 웃고 있는 나는 순도 몇 퍼센트의 나이며,

sns 속 내 모습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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