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스에서 일상의 소중함 찾기
일본 버스는 변화를 거부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뒷문으로 들어가 작은 기계가 내뱉는 작은 종이를 받는다. 종이에는 촌스러운 보라색 인감의 도장이 찍혀있다. 각자 자신에게 부여받는 번호를 붙들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맨 앞의 작은 화면을 주시한다. 번호에 따라서 금액이 조금씩 올라간다. 짤랑거리는 동전을 세어가며, 제발 내가 가지고 있는 동전 개수가 충분하기를 바란다. 10엔.. 20엔..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괜히 동전을 한 번씩 더 쳐다본다. 그렇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면 기사님 옆에 놓인 기계에 작은 표와 동전을 넣는다. 괜히 기사님을 '이 정도면 충분하죠?'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작은 미소가 허락되면 감사함을 표현하며 내린다. 그러다 가끔 동전을 거슬러주는 입구와 진짜 투입구를 착각해서 더 작은 단위의 동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스미마셍을 두 번 이상 말한다. 그러면 기사님은 웃으며 다시 내가 넣는 동전들을 살펴본다. 같이 여행한 친구에게 들었는데, 보통 이런 일들이 종종 있어서 정류장에 도착하고 승객이 내릴 때까지 아무도 재촉하거나 빨리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실수를 해도 허둥대지 않고, 기사님과 한마디 더 나눌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쉽게 지나가던 순간들을 곱씹는다. 평소의 나는 어땠지. 한국에서 버스카드를 딱- 찍고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만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보통 뒷문으로 내리기 때문에 기사님에게 짧은 인사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카드를 찍고 문이 닫히기 전에 급하게 내리기 바쁘다. 반면에 일본 버스 안에서 나는 작은 종이를 목적지까지 꽉 붙잡고 있다. 의미 없는 숫자를 쳐다보면서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란다. 기사님과의 짧은 인사도 잊지 않는다. 아날로그는 느리고 답답하다. 과정 하나하나가 귀찮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날로그는 따뜻하다. 기사님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다. 무사히 도착지에 내려주어서 고맙다고. 일상의 작은 감사함을 잊고 사는 기분이다.
일본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아날로그의 나라 일본. 여행 오기 전에는 번거롭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직접 경험해 보니 느림의 미학이 사회를 조금 더 여유롭게 그리고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 둘 동전을 세면서 계산대 앞에 오래 있는 것도, 버스표를 뽑고 소중하게 들고 가는 것도, 키오스크나 태블릿이 아닌 점원이 직접 주문을 받는 것도, 당연하면서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일상의 순간을 지나치는 것이 아닌 영위하는 것. 그것이 아날로그가 주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