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Cares?
'어.. 서류 다 챙겼나? 개들은 괜찮을까? 짖고 있진 않겠지? 그럴 리는 없겠지. 목마르겠다. 쉬야도 참고 있을 텐데.. 미안해라. 사서 고생시키는 건가? 세관 신고서.. 이게 맞지? 음.. 어.. 영어로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우리 숙소, 에어비앤비라고 하면 되나? 장소가 계속 바뀌는데 하나만 말하면 되나? 하.... 영어 공부 좀 더 할걸. 검역소는 어디지? 안 보이는데.. 그나저나 켄넬에 덮여있는 망을 잘라야 할 텐데. 가위를 빌릴 수 있을까? 렌터카 시간 다 돼 가는데 늦으면 어쩌지? 개가 있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 그거 예약할 때 적었는데 전달이 됐을까? 아참, 우리 떠나는 날이 언제지?'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는 클리어 파일로 인덱스까지 붙여 꼼꼼하게 준비한 서류 뭉치를 들고도 입국 심사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줄이 짧아질수록 굳어져 가는 내 얼굴을 보며 스냅이네가 한마디 했다. "언니가 해외 나갈 때마다 왜 출입국 심사에서 걸린다고 하는지 알겠어요! 잔뜩 긴장한 언니 얼굴을 보세요. 누가 봐도 수상하다고요~." 긴장을 풀라며 건넨 농담에는 나의 본질적인 문제가 들어있었다. 그래, 긴장을 풀자. 한숨을 크게 내쉬어 봤다. 그런데 우리 앞의 사람에게 출입국 관리 직원은 아주 까다로운 질문들을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계속 던졌다. 캐나다 공항은 인천과 다르게 부스에서 입국 처리를 하지 않는다. 미리 키오스크에서 출입국 신고를 하고 그 종이를 출력해서 마지막으로 줄을 서서 직원을 만난다. 그래서 앞사람의 출입국 신고 과정을 바로 뒤에서 다 듣고 볼 수 있었다. 앞사람에게 심문하는 듯한 긴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우리는 강아지가 있어서 더 까다롭게 물어볼 것 같았고 나는 다시 얼음이 되었다.
"(까탈스럽게) 어디서 왔어?" - 한국.
"세관 신고할 게 있다고? 어디 보자(신경질적으로 종이를 넘기며).... 강아지가 있어?" - 응, 두 마리.
"강아지가 기다리고 있겠네! 얼른 가봐!!!"
반려견과 함께 왔다는 말에 빠르고 시원하게 입국 심사가 통과되었다. '어? 어? 끝난 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14시간 동안 켄넬 안에 있었을
한들이와 스냅이를 찾으려고 넓지도 않은 공항을 달리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어디 있지? 안내 표지판은?' 두 눈으로 빠르게 스켄해 봤지만, 잘 모르겠어서 다른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강아지를 먼저 찾으려고 했는데, 그 직원이 "강아지는 절차를 지나 나올 거야. 그러니까 여기에서 짐을 먼저 찾고 몇 번으로 가면 돼."라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각각 켄넬을 놓을 카트를 끌고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조용하지만 애처로운 표정의 강아지 두 마리가 우릴 보고 있었다. "한들아아~"를 말하다 말고, "아, 기록! 사진 찍어야 해!" 기다리는 멈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급히 핸드폰 셔터를 눌렀다.(이때 사진은 다 흔들렸더라.) 그리고는 초록 그물망에 쌓여있는 켄넬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한들이를 만지며 "아이고, 수고했어. 울 애기."를 연달아 말했다. 짐과 멈머들을 찾은 후, 세관에 가서 신고 서류를 제출하고 검역비를 지불한 후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일단 이 초록 그물을 끊어야 했다. 그래야 긴 시간 참아온 배변을 시킬 수가 있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나오는데 부드럽고 경쾌한 목소리로 공항 도우미분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Hi, Babies~!" 두 분의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각자 엄청난 속도로 말을 쏟아 내셨다. "우리 앤젤들 어디서 왔니? 한국이라고? 몇 시간을 비행했니? 세상에! 그럼 빨리 쉬야해야지. (세상 애처로운 표정으로) 푸어 베이비스, 잠깐만 기다려." 그러시더니 한 분은 가위를 빌리겠다고 안내 데스크로 향하셨고, 다른 한 분은 다소 긴장하고 얼빠져 있는 우리의 맨탈을 케어해 주시기 시작하셨다. "아가씨들~ 여기서 나가면 바로 강아지 배변 장소가 있어. Just 10 steps! 그런데 어디서든 괜찮아. 밖엔 나무와 풀이 아주 많다고~. (한쪽 눈을 찡긋찡긋 하시면서) Who Cares~? 이런, 귀요미들 조금만 기다려~."
이내 돌아오신 다른 분께서 안내 데스크에 가위가 있으나 가지고 올 수 없다 하니, 우리들이 직접 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멀지 않은 안내 데스크까지 같이 가주시겠단다. 그 짧은 거리에서도 쉴 새 없이 걱정을 해주셨다. "이동은 어떻게 해? 차를 빌렸다고? 어느 회사? 아, 그건 건물 밖 주차장으로 가면 돼. 길을 건너서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안내 표지판이 보이는데 좀 걸어야 해. 끝까지 가면 보이니까 쭉 걸어가. 아, 일단 개들 쉬야시켜야 하잖아. 그럼, 여기에 짐을 두고 가. 우리가 보고 있을게. 짐까지 가져가려면 너무 힘들어. 그런데 꼭 그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나가서 급하면 볼일 보는 거지. (한쪽 눈을 찡긋찡긋 하시면서) Who Cares~? 스위티들 맘대로 하렴."
안내 데스크에 가자 할머니께서 직원에게 빠른 영어로 이들이 가위가 필요하니 달라고 하셨다. 직원이 가위를 건네주려던 찰나, 보스쯤으로 보이는 다른 직원이 경직된 표정으로 막아섰다. 위험하기 때문에 가위를 데스크 밖으로 내줄 수 없단다. "여기 개들이 있어!" 다급하게 할머니가 말씀하시자, 깜짝 놀란 보스 직원이 혀를 반쯤 접은 상태로 "Poor Babies! 내가 구해줄게!" 하며 가위를 들고 나와 그물망을 빠르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 어떻게 온 거야. 힘들었겠다. 목마르지? 얼른 꺼내줄게! 쉬도 마렵겠네. 세상에, 이 귀요미들을 어째. 우린 어벤저스야! 너희를 구할 거야!" 하며 다른 직원에게도 가위를 들고 오라고 하더니, 두 켄넬의 그물망을 순식간에 해체해 주었다. 아니 그물망이 불쌍할 정도로 난도질에 가깝게 입구만 급하게 잘라냈다. 그러고는 배변 장소를 또다시 친절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무거우니 짐은 잠깐 여기 두고 가란다. 우리가 지켜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개들이 급할 테니 배변 장소까지 못 가면, 나가자마자 풀이 많으니 그냥 시키란다. "Who Cares~?"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며.
한국 공항에서는, 평소처럼, 개가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시선들과 혐오성 발언들을 들으며 출국했다. (이 이야기는 좀 길어서 다음에 다시 풀어 보겠다.) 그러다 비행기를 타고 내렸을 뿐이었는데, 우리는 마치 이세계로 소환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캐나다 공항에서 개가 있다는 말에 프리 패스한 입국 심사도, '큰 개'가 아닌 '베이비'라는 호칭도, "Who cares~?"라는 말을 하며 환한 미소와 함께 눈을 찡긋찡긋 하는 그 모습도 모두 내 눈엔 '앤젤'이었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내 등을 살짝 도닥여 주던 손길, 따스한 환대에 긴장했던 마음이 한순간 풀어지며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내가 진짜 말로만 듣던 '개나다'에 도착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