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익숙지 않은' 애정 어린 시선들,
Hi, Baby~ Hi, Angel~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웃는다. 우릴 보며 웃으며 인사한다. 아니, 이 '시커멓고 큰' 멈머들을 보며!!
귀가 뾰족하고 몸이 검은 한들이는 한국에서는'크고', '늑대 같은', '무서운' 개라는 소리를 늘상 들었다.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더더욱 조심히 산책했다. 남편이 없이 혼자 산책 나갈 때는 주눅이 들었다. 또 어떤 시비에 걸릴까,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늘 노심초사했다. 조용하고 얌전히 길을 걷고 있을 때도 어김없이 시비를 건다. 그렇게 큰 개를 왜 데리고 나왔냐고. 어휴~ 무섭게 생겼다!라는 무례한 얼평(?)은 아주 사소한 표현이다. 그냥 지나가다 대뜸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말만 다를 뿐 그 내용은 위와 같다.
남들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았다. 나름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터였기에 한들이가 가족이 되면서부터 '젠틀멍 되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대형견'인 한들이가 아파트에서 살기 위해서는 교육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 온 한들이는 고작 3개월이 채 안된 아가였지만, 조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훈련사님을 모셔 한 달간 '퍼피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훈련했다. 우리 강아지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저 생긴 걸로 평가받고 욕을 먹었다. 억울했다.
움츠린 어깨와 반경 100m의 눈치 레이더를 돌리며 한국에서 산책하던 습관대로, 캐나다 동네를 걸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Hi, Baby~ Hi, Angel~"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처음엔 어색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스냅이네와 나는 서로를 보며 "정말? 이런다고?"를 계속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걷기를 수십 분, 또 여러 차례를 지나니 그 따스한 시선이 점점 당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졌다. 긴장하고 짧게 잡은 줄을 살짝은 여유롭게 잡고 걷게 되었다. 애정 어린 인사에 반갑게 응대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뀌니 한들이도 변했다. 걸을 때 더 당당하게 꼬리를 올리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한껏 웃으며 표현했다. 내가 행복하니 한들이도 행복해했다. 그리고 한들이가 행복해하니 내가 행복했다.
'길거리 산책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거구나..!'
쏟아지는 햇살도, 청아한 하늘도 모든 게 좋았다. 내 마음이 바뀌니 모든 게 좋아졌다. 카페와 식당의 테라스에서는 반려견을 동반하는 것이 당연했다. 주인 발 곁에 엎드려 쉬는 강아지들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많은 상점 앞에는 강아지를 위한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강아지를 잠시 묶어 둘 수 있는 독파킹 고리가 있거나, 일반 상점에는 반려견과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상점에 들어가기 전 우리가 조심스럽게 강아지와 함께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면, "Sure!" 그걸 왜 묻느냐고 할 정도였다.(출입이 불가능 한 곳도 물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상점 안에서는 물건을 건드리거나 마킹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다른 손님들을 위해 줄을 아주 짧게, 개를 내 옆에 바짝 붙여서 걷게 했다. 그리고 복잡한 곳은 한 명이 문 앞에서 아이들은 앉히고 함께 기다렸다. 타인에게 배려받는 만큼 나도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허용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끝까지 누리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가 만나는 접점에서 '서로' 배려하며 양보해야 한다. 캐나다에도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개를 보고는 그저 살짝 거리를 두고 지나간다. 내가 무섭다, 왜 큰 개를 데리고 나왔느냐, 물면 어떡하느냐, 입마개는 왜 안 하고 나왔느냐, 무례한 말을 하지 않는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무섭다고 하여 "아구~ 무서워! 왜 돌아다니시는 거예요? 내가 무섭다고요!"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무례함"이란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선 큰 개에 천덕꾸러기 신세를 못 면하다가 캐나다에 가니 우리 애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가 되어있었다. 길거리 노숙자(와 비슷해 보이는) 분들도 "Hi, babies~"라고 말을 건네시더니 자기가 처음 키운 강아지가 보더콜리였다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보더콜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My first dog is a Bordercollie!"
숙소가 있는 동네에 유명한 피자집이 있다고 해서 포장하러 갔다. 식품점 안에는 못 들어가니 문 앞 벤치에 독파킹을 했다. 그런데 스냅이네가
"언니,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언니가 사 오시고 제가 밖에 있을게요."
"왜요? 여기 독파킹하면 될 것 같은데요?"
"아니, 우리 애들 예쁘다고 누가 훔쳐갈까 봐 불안해요!"
하하하. 크게 웃음이 났다. 한들이는 가게 밖에서 혼자 잘 기다린다. 독파킹도 어릴 때부터 훈련을 했다. 그런데 요즘엔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하는 때가 많다. 이유인즉슨 누가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해코지가 무서웠던 반면 캐나다에서는 우리 개가 예뻐서 훔쳐갈까 불안하다니. 그 간극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캐나다에 온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우리는 금방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