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어느날
여느 하루와 다름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건소로 향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라 그런지 부쩍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방접종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내 역할도 덩달아 바빠졌다. 새로 취업한 곳에서 요구하기에, 실습기관에서 요구하기에, 진학한 학교에서 요구하기에 증명서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대학 새내기쯤으로 보이는 무리는 이 귀찮은 일마저도 즐거워 보였다. 증명서를 떼려면 신분증의 주민등록번호를 전산에 입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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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가 맞겠구나. 그들은 기다리면서 무엇을 먹으러 갈지 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꽃무늬의 옷은 그날처럼 맑은 하늘과 따스한 기온에 어울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꽃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고 있었고 나무들은 새잎을 돋우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떠한가. 지지부진한 군복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절반을 보냈던 의경 생활에 비해 보건소 공익은 축복받은 느긋함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시간 흐름이 더디기는 마찬가지. 활기 넘치는 봄만 되면 되레 무기력해진다. 그날도 봄 같은 사람들을 보며 하염없이 무기력해지는 중이었다.
2시쯤 되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잠시 뜸해진다. 가장 돌아다니기 좋을 시간. 아마도 사람들은 이런 공공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일을 오전에 처리하려 하나보다. 그러고는 오후쯤엔 각자 할일을 하거나 놀겠지. 오히려 좋다. 나에게는 편한 시간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네이버 디자인 블로그를 클릭했다. 무기력과 박탈감에 분통이 터지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생각을 비우고, 내 감정에 닿기 전에 반사적인 마우스 클릭으로 표출한다. 블로그에는 각종 분야의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한 글이 수두룩하다. 나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곰곰이 떠올리며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던 중 한 부모가 쭈뼛쭈뼛 문 앞에 발을 들였다. 문 밖 복도에는 한 아이가 교복을 입고 앉아있었다. 아이 서류를 떼러 왔나 보다. 늘 하던 것처럼, 부모가 알려주는 아이 주민등록번호를 전산에 입력했다. 그런데 기록이 없었다. 예방접종 증명서는 어떤 예방접종을 했는지 그 기록이 나와있는 서류다. 근데 기록이 하나도 없었다.
‘국가어린이예방접종’이라고 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출생 후부터 만 12세까지 갖가지 필수 백신들을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다. 사실 말이 지원이지 필수에 가깝다. 전염병은 그만큼 집단면역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갈 땐 기록을 요구하기도 한다. 계속 국가 차원에서 접종 여부를 관리하는 구조인 거다.
그런데도 기록이 없다. 태어나자마자 맞게 되는 결핵 주사 말고는 기록이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병원에서 등록을 안 해준 경우다. 혹은 당시 전산시스템이 없었던 경우다. 근데 후자는 당연히 나 같은 2000년대 이전 출생자의 경우라, 부모에게 재차 물었다.
“확인해보니까 한 번도 예방접종을 한 기록이 없는데, 맞나요? 혹시 맞았는데 전산 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라면 확인 도장을 받았을 수첩을 들고 오셔야 해요.”
기계적인 질문이었다. 반면,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깡촌에 살아서 그런 거 잘 모릅니다.”
사실 나도 질문을 하면서 뻔한 대답을 예상하진 않았다. 그들의 표정이나 행색이 조금은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와 부모, 세 명의 피부는 햇볕 아래에 자주 노출된 듯 까무잡잡했다. 그렇기에 아이가 입고 있는 교복은 다소 어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학생 1학년의 교복은 보통 크게 맞추어 펑퍼짐한데, 실내에만 있는 흰 피부도 아니고 게임을 오래 해 나빠진 시력을 교정해주는 안경도 없으니 내 스테레오타입 속의 도시 아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부모 또한 보편적인 도시의 부모와 달랐다.
대개의 도시 엄마는 노년의 여성처럼 머리를 볶지 않는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등산복이었다. 재래시장 한켠에 걸려있는 그런 재질과 배색 말이다. 햇볕에 오래 노출되면 피부색뿐만 아니라 주름 등의 피부 노화도 빨리 진행된다. 그렇기에 부모의 겉모습 나이는 실제 나이에 비해 많아 보였다. 그 모든 시각적인, 그리고 사회적으로 해석되는 정보가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런 해석 자체가 다소 폭력적이다. 때문에, 그렇게 인식됨과는 별개로 판단을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기계적인 질문을 뱉었다. 겉으로 해석되는 스테레오타입은 뒤로 미루고, 나는 여느 때처럼 똑같이 대응한 것이다. 하지만 대답을 듣는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필수예방접종이란 보편 복지다. 아까도 말했듯, 국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외국인 아이도 무료로 접종한다. 집단면역을 위해서다. 각지의 소아과에서는 해당 시기를 안내하고, 또 선택접종까지 홍보한다. 접종 기록이 많이 누락된 아이의 경우는 보건소에서 일일이 집에 연락을 취한다. 백신을 불신하는 이유로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도 있다. 혹은 귀찮다며 꼭 맞아야 하냐고 물어보는 무식한 부모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두, 이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깡촌’이라 표현하는 내 앞의 부모는 ‘그런 거’를 모른다고 했다. 어떤 연유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도시 안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아이 학교에서 증명서를 들고 오라 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 집에서 가까운 보건소가 있기에 내가 있는 창원중앙보건소까지 올 필요 없었다. 동네 주민센터가 아닌 굳이 시청까지 발걸음을 한 이유 또한 단연 정보 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보건소가 여러 군데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이 가족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살아온 세상은 대체 얼마나 다른 것인가. 당연시 받는 복지, 상식적으로 받아야 하는 접종을 귀찮다는 이유로 챙기지 않는 부모더러 무식하다며 분노하기만 했었다. 생기 넘치게 일상을 즐기는 새내기를 보며 내 신세를 한탄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모니터를 통해 국내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과 인터뷰를 보고 있었다. ‘예쁜 디자인’을 좇아 감탄하고 또 부러워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다 지방으로 오니 맞닥뜨리게 되는 기회의 불균형과 정보의 가뭄에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모조리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둔탁하게 때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급한 접종을 하게 하고 다음 일정을 안내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