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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Nov 08. 2022

익숙한 모습

안경을 부러뜨리고 한 생각.

                      

 어젯밤에는 안경을 부러뜨렸다. 두어 해가 지나 이제는 몸과 같이 느껴지는 얇고 동그란 안경이었다. 문득 글을 적다 휴지로 안경을 닦는데, 안경알 사이 코를 걸치는 부분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버렸다. 다행히 그 밤에는 예비용(이라지만 사실 멋을 부리려 사 놓았던)의 안경이 있었지만, 오래 쓰던 안경을 급작스레 잃은 마음이 꽤나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이상 떨어질 것이 없는 탓인지, 어느 해부터는 안경의 도수를 조정할 필요가 없었다. 예비용 안경을 살 즈음부터 알게 된 사실이다. 안경집 사장님께서 안경을 내어주며 “이거랑 저거랑 같은 도수니까, 어지럽고 그런 건 없을 거다.” 하고 말씀하셨던 기억.     

 하지만 어젯밤의 예비용 안경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사실상 같은 안경알일텐데, 멀리 있는 것들은 가깝게만 보이고 눈가로 보이는 것들은 죄다 납작한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다가, 머리가 조금 아파오다가, 그래도 글을 적어보자며 자판을 몇 눌러보다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찍 침대를 파고들어야 했다. 다행히 글을 적는 지금의 세상은 적응이 되었는지 꽤나 정상적으로 보인다.     


 아침에 새 안경을 쓰고서 처음 한 일은 안경테를 찾는 일이었다. 어젯밤에 부러뜨린 안경과 같은 모델의. 혹은 비슷한 모양이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여럿의 안경테를 찾았지만 정작 아직 무엇을 사야겠다고 결정하진 못했다.

 무언가를 잃고 나서는 꼭 비슷한 것을 찾게 된다. 같은 모양의 안경테나 같은 브랜드의 이어폰 같은 것. 잃은 것들과의 역사 속에도 불편한 것들은 분명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이번에는 괜찮을 것이라며 꼭 비슷함을 찾아 헤매이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꽤나 비슷했다. 수많은 싸움과 불편한 감정들을 분명 기억하면서도, 헤어지고 나면 새로운, 하지만 이전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을 데려오는 종류의 것이었다. 주변의 농담 섞인 핀잔에도 “이 사람은 분명 달라. 내가 알아.” 하며. 하지만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서는, 스스로도 이전의 누군가가 생각난다는 것을 매번 알고 있었다. 늦었지만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몇 년째 스스로 사랑을 저버린 것도, 어쩌면 그러한 것에 대한 기다림이겠다. 당신과 하나도 닮은 것이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어느 순간에 꼭 당신을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은 주형鑄型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정해진 사랑의 틀도 없이 쇳물같은 마음으로 만난 마음이었으니 식어버린 이후에 당신의 모습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지금은 다시 녹아내리거나 차라리 풍화하자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외로움이나 곁이 없는 공허함도 당신의 모양을 깎아 지우는 일의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당신의 모양이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거나, 혹은 당신의 모양이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고작 안경을 부러뜨린 이야기가 흘러 흘러 당신에게까지 왔다. 매번 당신으로 끝맺음을 하는 이러한 습성도 어느 순간에는 풍화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시간이 조금은 빠르거나, 혹은 영영 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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