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주안 Nov 03. 2022

허기 虛飢

                        

1.

 배고픔의 감각을 좋아한다. 자리에 앉아 오래간 글을 적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허기의 감각이 찾아드는데, 든든하지 못했던 점심의 식사를 생각하고 지금의 시간은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를 가늠하다 보면 문득 이렇게 글이 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비어있는 듯한 정淨한 느낌을, 비루하고 굶주린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마음을 어쭙잖게 따라해볼 수 있음을 반갑게 여긴다. 고작 책상에 앉아 허기를 느끼는 것으로 그들의 삶을 얼마나 가늠할 수 있겠느냐는 작은 죄책감도 항상 함께이다. 그렇게 한없이 가벼운 동시에 한없이 무거운 몸으로 글자들을 적다 보면 종종 봐줄 만한 것들도 나오는데, 나는 그러한 글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허기진 상태에서 나오는 글들에는 특유의 여림이 있다. 많은 것을 놓아버린 듯, 혹은 그만큼 간절한 듯 글을 적다 보면 힘없는 손가락 끝의 감각이 글자들에 전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읽는 이에게까지 전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유약하고 간절한 글을 적고 싶은 욕망이 있다. 닿을 수 없는 이에게 떨리는 손을 뻗는 듯한 느낌의. 그토록 간절하고 절박하지만 끝내 닿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는, 들꽃의 줄기 같은 글을 적다 보면 닿을 수 없는 당신에게, 혹은 당신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힘없는 가정들도 세워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배고픔의 시간을 조금 더 보내다 보면 허기는 슬픈 꿈 같은 것으로 찾아온다. 그 즈음에는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그들이 지었던 표정의 일부나 목소리의 조금 같은 것들도 차례로 찾아온다. 배고픔은 그리움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그러다 보면 매번 함께이다. 차례로 안부를 묻고 혼자 아쉬워도 해 보면 어느새 매번 저녁이다.    

 

2.

 나의 사랑은 배고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를 만나는 매일마다 밥을 먹지 않고 왔으면 하는, 조금은 짓궃은 바람이다. 오늘은 늦잠을 자서, 오늘은 다른 무언가를 하느라 밥을 먹지 못했어. 당신은 다가오며 그런 말들을 꺼내고,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는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당신의 배를 채워주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부족함을, 당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일을 나는 그렇게나 좋아한다.     


 당신의 허기를 채워주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 또한 그만큼이나 허기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랑을 그리워하고 또 아파하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슬픔과 공허가, 멍하니 앉아 울지도 못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저녁이 가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한없이 주는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 더 많은 사랑을 건네고, ‘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편하다’며 괜찮은 척 웃어 보인다.


 요즘에는 그들의 사랑이 ‘나를 사랑해 달라’는, 안타깝고 간절한 부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을 가만히 끌어안으며 고맙고 애정한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싶지만, 사실 행동으로 옮겨지는 일은 잘 없다. 나도 이만큼이나 텅 비어있는 사람이라. 매번 미안하고 아프게 생각한다. 그렇게 빈 마음과 세상에 뿌려지는 사랑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어두워 있다.

작가의 이전글 무無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