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빛을 내고 있습니다.
서재의 낡은 히터를 켜며 생각했다. 어떤 열은 반드시 빛을 수반한다.
히터의 열이나 아침에 드는 햇빛도 그렇다. 조금 찾아보니 모든 물체는 복사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중 가시광선의 영역에 있는 에너지가 우리의 눈에 빛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열에너지와 빛에너지, 초등학교의 과학 시간에 들었던 어렴풋한 단어들이 반갑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꼭 빛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멋지고 예뻐서, 혹은 어느 대기업에 들어가서 등등. 나는 주로 옆에 서서 동경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역할이었는데, 매번 그렇게 집에 돌아간 후에는 약간의 부러움과 공허함이 찾아오곤 했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혹은, 평생 한 번이라도 저렇게 될 수는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전에도 삶은 부러움의 연속인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축구를 잘 하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방송부원으로 사진을 찍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카메라 안을 독차지하는 밴드부나 학생회 선배들이 부러웠다.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내가 봐도 멋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나의 무언가보다는 마냥 그들의 빛이 좋게만 보이던 시절. 그들이 가진 빛이 내게는 없으니, 나는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최근 SNS를 통해 연락을 하나 받았다.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있으셨는데, 이번 시집을 사서 읽다가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셨고, 또 시를 읽으며 많이 울고 위로 받으셨다는 연락이었다.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따듯한 마음 덕에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게 되셨다고.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답변을 드렸던 기억.
매번 감사하고 황송한 마음이지만,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전혀 대단하거나 멋있지 않은 나도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있다고. 글자들로 마주하는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따듯한 빛을 비추기도 한다고.
누구나 각자의 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단지 그 아름다운 빛들을 내가 보지 못 할 뿐이라는 것도 그렇다.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무시하지 말고, 빛을 내라며 재촉하거나 함부로 대하지도 말아야겠다. 주변이나, 내 스스로에게도 같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