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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Dec 15. 2022

따뜻한 어둠

 어둔 저녁이나 깜깜한 밤에도 불을 절반만 켜는 것이 좋았어요.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 조명을 켜거나, 천장에 달린 두 개의 조명 중에 작은 것만을 켜는 식으로. 어둑한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음침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볕을 좋아하는 내가 볕 들지 않는 시간을, 매일의 낮마다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이 두렵지 않게 돼요. 잠시만 생각해보아도 이것은 제법 당연한 일인데, 우리가 빛으로 나아가는 시간은 대부분 새로운 위험과 직면하는 순간이고, 어둠으로 드는 시간은 대부분 그리 버겁지 않은 장면들이었기 때문이죠.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바라본 첫 빛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다가오는 하루가 기대되지 않았던 아침들에도, 낯을 가리는 내가 어느 날 조명 가득한 연단에 서서 이야기를 내뱉어야 했던 순간들에도 항상 나를 반기던 것은 어둠이 아닌 빛이었고요. 모든 것이 어둑해지는 겨울을 간절히 기다리던 여름에는 다들 그렇듯 그늘을 찾았고, 그렇게 같은 그늘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어둑한 곳을 찾아다니는 나도 보통 사람인 것만 같아서,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어둠 속에서는 많은 것들이 지워져요. 얼굴의 생김새나 눈동자의 색깔, 그 뒤에 있는 편견이나 선입견 같은 것들도요. 그렇게 사람 앞에 사람, 사람 옆에도 그저 사람 뿐인 그 순간은 어쩌면 모두가 그다지 다르지 않아 더 편안하고 다행스럽고 사랑스러울 수도 있겠어요. 그렇게 마냥 포근하고 아프지 않게 서로를 다독여주기도 하면서요.     


 우리도 그럴까요. 같이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있어볼까요. 상처나 못난 모습 같은 것은 그 안에 다 숨겨버리고, 서로의 숨소리를 듣다가 서로를 꼭 안은 채 맥박을 맞대고도 있어볼까요. 그렇게 한없이 괜찮아지기도 하고, 얼굴이 보이지 않아 더 쉬이 드러나기도 하는 아픔을 잡고 함께 울어보기도 할까요.

 그렇게 울다 잠든 밤은 철없이 평화롭기도 할 것이고요, 커튼을 쳐 놓아 여전히 밝지 않은 아침에는 서로의 퉁퉁 부은 눈을 보며 웃고, 사랑을 말하기도 해 보려고요. 그런 식으로 서로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우리는 또다시 밝은 빛으로 나아가겠죠. 또다시 찾아올 따뜻한 어둠을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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