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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Feb 16. 2023

가치라는 것

우린 무엇으로 채워져가나요

 필연적으로, 결국 모든 이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순간까지의 삶을 고민하게 됩니다. 사는 일이 길이가 정해져있는 서랍 같은 것이라면,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얼마나 잘 채우고 꾸미는 것일 거라면서요.

 엊그제는 함께 글을 쓰는 친구에게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삶이 무가치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라는. 아직 답변을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질문을 따라 이런저런 생각과 기억들을 하는 동안 물음은 조금 더 본질적인 것이 되더군요. ‘삶의 가치라는 것은 뭘까?’ 하고요.
 목록을 조금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무가치했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치있었던 순간을 알아야 할 것만 같아서요. 꽤나 오랫동안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목록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1.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되었을 때
 2. 내가 가치있다 여기는 무언가를 해냈을 때
 3. 누군가의 시선 속에 ‘좋은 사람’으로 비춰졌을 때

  ‘이 정도면 가치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목록을 다시 읽어보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다 ‘좋은’ 것들이네. 그렇다고 좋지 않았던 순간의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데. 세 가지 기준에 맞춰 걸러내다 보니 삶에는 그다지 많은 가치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20년이 한참 넘었으니) 이보다는 많은 가치들이 있었을 텐데, 문득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스스로를 너무 다그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우선은 마음에 들어 하는 순간들을 더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다고 생각했을 때, 마당을 찾는 고양이들에게 아끼는 마음을 담아 밥을 내어주었을 때, 직접 고른 새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받았을 때. 어쩌면 금방 잊을 정도로 사소한 순간들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따듯하고 행복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리고 남은 공간에는 마음을 주거나 받았던 순간을 채워넣었습니다. 고마움과 미안함, 위로와 힘을 주고받았던 순간들을요. 기억들을 차근차근 뒤적이다 보니 좋은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 모두를 내가 잊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고도 남은 순간에는 무엇을 넣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슬픔을 넣기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프고 죽을 것만 같았지만 그로써 나는 더 단단해졌고, 비슷한 슬픔을 겪는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힘과 위로를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생각을 마치고 나니 삶의 모든 순간은 가치로 가득했습니다. 스스로가 무가치했다고 여겼던 그 모든 순간에도 우리는 모두 가치가 있었고, 다만 그것을 그때는 몰랐을 뿐이라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1. 모든 순간

 친구가 던진 질문으로부터는 하염없이 멀어졌습니다만, 그리고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새로 정한 가치의 순간은 이렇습니다. 아마 나도, 당신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서랍을 잘 채워가고 있습니다만, 바라기는 당신의 서랍에는 더욱 따듯하고 다행스러운 것들이 가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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