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끼리끼리' 문화가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선후배 사이의 엄격한 도제식 교육으로 인력 개발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검찰 인사를 할 때마다 언론에는 '기획통', '공안통', '특수통' 등의 단어가 등장했다. 기획통과 공안통은 묶어 공안기획통으로 칭하기도 했다. 이들은 법조 인맥의 양대 산맥으로 총장도 번갈아 가면서 배출했다.
특수통은 과거를 기준으로 평검사 시절 대검 중수부 연구관, 부장검사 시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검사장이 된 후 대검 중수부장이 되는 것이 엘리트 코스다. 공안통은 대검 공안부 연구관,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치면 최고 엘리트다. 기획통은 법무부 검찰과 검사, 검찰과장, 대검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대검 기획조정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의 요직을 맡게 됐다.
검찰의 이러한 '통' 문화는 여러 차례 법조계나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었다. 그래서 한 차례 변화가 시도됐다. 2013년 특수통이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이후 총장 자리에 오른 김진태 전 검찰총장 시절이었다. 김 전 총장은 특정 인맥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사람이었고, 형사부 경험이 많은 검사였다. 김 전 총장은 2014년 1월 처음 단행한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29명 전원을 다른 검찰청으로 전출 보냈고, 그중 3명만 서울에 남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공안, 특수부장 검사들도 모두 지역에 가서 형사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강조됐던 형사, 공판부 강화 등이 이미 이때 시도됐던 것이다.
김 전 총장의 이러한 인사 시스템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부임하면서 불과 1년 만에 많은 예외를 만들어 내게 된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 가운데 3명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우 수석은 검찰 재직 시절 특수통의 코스를 그대로 밟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로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기 전만 하더라도 그의 검사장 승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박근혜 정부 첫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청와대 민정비서관 발탁 후 민정수석으로 승진한 그는 철저하게 구 시스템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요직에 두고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김 전 총장까지 2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면서 하방 인사 원칙은 온 데 간데 없어졌다. 다시 옛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러한 옛 시스템이 더 강화됐다는 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뒤 특수부 관할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서 같이 일했던 한동훈 검사를 앉혔다. 3차장 아래 송경호 특수2부장도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2년여 동안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윤 총장이 총장이 되자 한동훈 차장은 검사장급인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해 또 윤 총장을 보좌했다. 송경호 부장은 3차장 자리를 이어받는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첨단범죄수사1부장, 특수1부장을 했던 신봉수 부장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됐다. 2차장은 공안 담당이지만,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이후 특수부장 출신이 보직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역시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특수1부장을 1년 간 했던 신자용 검사에게 돌아갔다. 검사장급 직급부터 중간 간부들까지 윤석열 사단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실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병우 사단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일종의 '이너서클'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지방 근무를 하지 않는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시련을 겪기 전까지는 윤석열 총장도 그랬다. 윤 총장은 2009년 8월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이 된 뒤 중수부 중수2과장, 중수1과장을 잇따라 맡는다. 그리고 길 건너에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했고, 수도권인 여주에 지청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여주지청장 시절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 돼 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했다.
한동훈 부장의 경우는 윤 총장보다 더 엘리트 검사였다. 예전에 검사들은 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하면 초임을 서울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부장은 군 복무를 마친 뒤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년 가까운 검사 경력 가운데 지방 근무를 한 것은 단 두 차례다. 한 부장은 2009년 MB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파견을 간 뒤 서울에서만 근무했다. MB 정부 시절 잘 나가던 검사들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한 부장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요직을 두루 맡았다 특검 파견 근무를 갔다. 과거 박영수 특검, 윤석열 총장과 대검 중수부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지방을 전전했던 윤 총장과 달리 승승장구했던 그는 특검을 거치고 난 뒤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고 실세 간부로 거듭난다.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수사를 총괄했던 송경호 3차장도 2015년 이후 수도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수원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을 거쳐 중앙지검 3차장으로 가게 된다. 지금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주요 자리에 있는 검사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지방 근무를 하지 않았다.
모르긴 하지만, 이러한 보직 관리를 받는 검사들은 전체 검사의 5%도 안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잘 나갔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보복을 가한 혐의에 대해 2심까지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과 2심 법원은 안 전 국장이 자신이 성추행한 경력이 있는 서 검사에게 좌천성 인사를 지시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 검사는 2015년 8월에서 여주지청에서 통영지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검찰은 큰 거점 도시에 지방검찰청을 두고 그보다 작은 도시에 지청을 두는데 지청은 규모마다 차이가 있다. 인구가 적은 지역의 지청은 검사 3명 정도가 근무하기도 하지만, 규모가 있는 지청은 수십 명의 검사가 있다. 지청 규모에 따라 지청장의 직급도 결정된다. 서 검사는 규모가 비슷한 여주지청에서 통영지청으로 가는 인사를 좌천성 인사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가는 인사였다.
그만큼 검사들에게 인사는 민감하다. 형사부, 공판부 검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족과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2년 수도권 근무 후 2년 비수도권 근무를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연수원 성적이 좋고, 어렸을 때부터 잘 나가던 검사에 눈에 띄거나 아니면 특정 시점에 일정 궤도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예외의 적용을 받았다.
이러한 '이너서클'의 구축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검찰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와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속한 이너서클은 하나의 권력이 됐다. 그 권력의 재생산을 시스템이 보장해 주고 견제는 약했다. 우리는 큰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그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했었다. 지금 나오는 검찰개혁이 시스템을 바꾸자는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