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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1. 전병헌 정무수석(2017년 11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해 유명 인물이 됐다. 특정 정권이나 인물에 충성하지 않고 수사기관으로서 독립된 검찰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윤 전 총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그를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윤석열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지휘한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많은 논란도 낳았다. 그 이유는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지검장이나 총장이 지휘한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과거와 달랐기 때문이다. 과거에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고 하면 정권 실세나 대통령 가족들이 권력을 이용해 금품을 수수한 사건을 검찰이 파헤치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가족보다도 가까운 최순실 씨가 사익을 취하다 꼬리가 잡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부정한 돈을 받은 공범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도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있었다. 대통령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부정한 돈을 받아 구속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안희정, 최도술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구속됐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의 아들들이 부정부패로 구속됐다.


 이와 달리 문재인 정부에서 언론 지상에 등장한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직권남용 사건이 많았다. 권력을 이용해 돈을 받는 과거의 사건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등은 모두 과거로 따지면 통치행위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이러한 일을 수사할지는 전적으로 검찰이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권력이 이런 수사를 막았다. 검찰에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넣어 검찰이 수사할 엄두를 못 내게 했다. 특히 레임덕이 오지 않고 40% 이상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정권의 통치행위를 수사한다는 것은 이전까지 검찰에서 없었던 일이었다.

 여권 인사들은 직권남용 수사에 대해 검찰이 과도하다고 계속 비판을 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윤석열 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 “사적 성향과 판단에 근거하여 법과 제도를 맘대로 재단한다”며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고 비판한 게 대표적인 예다. 문재인 정부 검찰의 첫 살아있는 권력 수사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점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첫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사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약 6개월이 지난 2017년 11월 한 일간지에 '검찰, 현직 청와대 수석 금품 로비 수사'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는 마감시간에 임박해 취재돼 간신히 조간신문에 넣은 티가 많이 났다. 보통 청와대 수석과 같은 거물급 수사를 단독으로 보도할 경우 1면 톱 기사를 쓰고, 3면에 해설 기사를 하나 더 넣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이 기사는 1면 톱으로 스트레이트 기사만 넣었다. 해설 기사를 쓸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기사의 소스는 ‘사정당국’으로 일간지나 통신사가 쓰는 전형적인 검찰 발 기사였다. 기사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는 (중략)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중략) 보고 있다’, ‘검찰은 (중략)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중략) 상당 부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중략) 진술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의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확실한 취재원이 있을 때 쓰는 기사의 전형과도 같다. 수사를 알고 있는 검찰 관계자로부터 직접 듣지 않았으면 기사에 쓸 수 없는 단정적 표현이 나열돼 있었다. 다르게 얘기하면 검찰에서 흘린 기사라는 것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윤석열 지검장 아래 한동훈 3차장이 지휘하고 신봉수 부장검사가 책임자였던 수사였다. 모두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전병헌 수석은 국회의원 시절 롯데홈쇼핑으로부터 재승인 관련 문제제기를 하지 말아 달라는 청탁을 받고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3억 5000만 원을 내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전 수석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이상 그가 직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수석급 대통령 참모가 현직 신분으로는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그는 사퇴하고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전병헌 전 수석을 조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되자 검찰은 수사를 확대했다. 롯데홈쇼핑뿐 아니라 GS홈쇼핑으로부터도 뇌물을 받은 혐의도 포착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이다. 보강수사 후 검찰은 전 전 수석에게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만, 역시 결과는 기각이었다. 검찰은 결국 전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한다.     

 전병헌 전 수석의 범죄 혐의는 국회의원 시절인 2013~2016년에 대부분 이뤄진 것들이었다. 검찰은 보도로 수사 사실이 알려진 뒤 2개월 여 만에 전 전 수석을 기소하면서 롯데홈쇼핑, GS홈쇼핑, KT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적시했고, 청와대 수석 시절에는 기획재정부에 압력을 넣어 한국e스포츠협회 관련 예산을 배정하게 한 것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전병헌 전 수석은 검찰의 기소 사실에 대해 "먼지떨이 수사"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 전 전 수석의 혐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있고 가족까지 연루돼 범위가 작다고 볼 수 없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정도는 아니지만, 전 전 수석에 대한 범죄 혐의도 상당히 다양했다. 적용된 혐의만 해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뇌물, 형법 상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 횡령,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이었다. 롯데홈쇼핑, GS홈쇼핑, KT 등 기업으로부터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e스포츠협회에 억 대의 부당한 후원을 하게 했고, 수백만 원 가량의 기프트카드 수령, 공짜 숙박과 식사도 제공받은 혐의도 있었다. 이와 별도로 e스포츠 방송 대표로부터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고, e스포츠협회 자금 횡령 혐의도 있었다. 그리고 청와대 수석 시절에는 기획재정부에 압력을 가해 e스포츠협회가 주관하는 예산을 편성하게 했다는 것도 기소 사실에 포함됐다. 처음 언론에 나올 때만 해도 롯데홈쇼핑 비리 정도만 알려졌지만, 추가 압수수색을 하면서 GS홈쇼핑 관련 혐의가 추가됐고 최종 기소 단계에서는 불법 정치자금 혐의까지 추가됐다. 수사를 시작한 이후 계속 범위를 넓혀가면서 기소 단계에서는 비리 종합판 수준이 됐다. 과거 검찰 특수부 수사의 레퍼토리와 비슷했다.     

 1심 재판부는 전 전 수석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3억 원에 이르는 롯데홈쇼핑 뇌물, 예산 배정 직권남용, e스포츠협회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했지만, 전 전 수석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항소심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는 롯데홈쇼핑 관련 부분만 인정했을 뿐 검찰이 1차 구속영장 기각 이후 추가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했던 GS홈쇼핑, KT 관련 뇌물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2심에서 전 전 수석은 집행유예형을 받는다. 2심에서는 GS홈쇼핑, KT뿐 아니라 롯데홈쇼핑 관련 뇌물 혐의도 무죄가 된다. 전 전 수석의 형이 크게 낮아진 것은 검찰이 기소한 5억 여 원의 뇌물 혐의가 다 무죄가 됐기 때문이다. 전 전 수석이 받은 것으로 인정된 뇌물은 롯데홈쇼핑 사장으로부터 받은 기프트카드 500만 원이 전부였다. 전 전 수석은 불법 정치자금 2000만 원에 대해서는 유죄를 받았고, e스포츠협회 돈 5000여 만 원을 횡령해 부인 여행 경비나 의원실 직원 급여를 지급한 사실도 범죄로 인정됐다. 정무수석 시절에 기재부에 직권을 남용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2심은 전 전 수석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별도 선고를 통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판결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이 재판은 문재인 정부 살아있는 권력의 첫 대법원 확정 판결이었다. 유죄 확정이 되긴 했지만, 수사 단계에서 언급됐던 5억 원의 뇌물 혐의에 비하면 법원에서 인정된 범죄 사실은 크게 줄어들었다.     

 전병헌 전 수석은 2017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받기 시작했고, 재판 절차까지 완료되는 데 3년 4개월이 걸렸다. 재판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범죄 혐의가 광범위해 다툼의 여지가 많고, 불구속 재판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구속 피고인 사건은 시간 제한이 있지만, 불구속 재판은 시간적 제약이 별로 없다. 이번 정부 들어 첫 살아 있는 권력 수사로 인식되고 있는 전병헌 전 수석 수사에서부터 광범위한 혐의, 당사자의 부인, 오랜 재판 등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앞으로 서술될 대부분의 사건이 그렇다. 구속영장 기각, 핵심 혐의 무죄도 앞으로 있을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이 벌인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중 불법 자금이 오고 간 혐의가 있는 몇 안 되는 사건이다. 청와대 재직 당시의 불법 자금 수수 혐의는 아니었다.     

 이 사건은 처음에 언론에 보도됐을 때 왜 이 시점에 이 사건이 등장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합리적인 의심의 이유가 있었다. 검찰은 2016년 9월 이미 롯데홈쇼핑 재승인 심사 관련 금품로비 의혹을 수사한 바 있었다.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등 돈을 건넸다고 검찰이 봤던 인사들은 이미 전 전 수석 수사가 본격화되기 1년 전에 이미 수사를 받았던 것이다. 전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 보좌진이 여러 비리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고, 이들의 범죄 혐의에 연루돼 있었다는 구설이 있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시절 어느 한 일간지 1면에 운전면허 필기시험 관련 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익명으로 기사가 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해당 기사가 오보라고 대응했고, 관련 사건은 수사가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정황 상 전 전 수석에 대한 파일은 수년 간 축적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보통 정치인 금품수수 수사는 돈을 건넨 상대방의 혐의를 수사하다 진술이 나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검찰은 진술이 나온 즉시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이 사건은 과거 사건과 달리 시차가 발생했기 때문에 '캐비닛 속 사건 꺼내기'라는 의심을 받았다. 캐비닛 속 사건 꺼내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처리 못한 사건을 묵혀 뒀다가 검찰이 필요할 때, 타이밍 좋게 사건을 꺼내든다는 것이다. 검찰을 의심하는 쪽에서는 당시 변창훈 검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 이 사건이 등장한 것에 주목했다. 정권의 충견으로 적폐 수사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검찰이 묵혀뒀던 ‘살아있는 권력’ 전 전 수석 사건을 꺼내들었다고 해석이다.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렸다는 의혹도 있다. 이런 의심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과거 검찰이 비판받던 행태 그대로다. 물론 전 전 수석 사건을 검찰이 캐비닛 속에 꺼내 언론에 알렸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검찰은 롯데홈쇼핑 수사 당시 확실하지 않던 첩보들이 그 당시쯤 확인되면서 수사에 돌입했다고 했다. 어떤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부에서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수사에 깊숙하게 개입한 사람만 수사의 동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병헌 전 수석 수사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있을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올 직권남용도 전 전 수석의 혐의에 곁들어져 있었다. 정치권에서 힘 있는 자리에 가면 으레 있었던 민원성 예산 확보와 관련된 일이었다. 이는 야당 의원들도 시도한다. 과거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댔다면 여기서 자유로운 정부나 대통령 비서실 고위직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과거 정치권력은 이런 수사에 대해 장막 뒤에서 압력을 넣고 힘을 발휘했다. 검찰이 쉽게 건드리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런 제약이 없었다. 금품수수가 아닌 직권남용 수사가 살아있는 권력 수사의 주류가 된 것이다. 전례가 없고 관행적으로 이어져 왔던 행위에 대해 수사가 계속되면서 논란은 터져 나왔다. 과거 현 정부의 통치행위로 인식되던 것들에 대한 검찰의 범죄 규정이 되면서 법원의 판단도 엇갈려 나왔다. 대법원은 전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최종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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