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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2. 김기식 금융감독원장(2018년 4월)

 2019년 8월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수사는 여러 가지 첫 사례를 만들었다. 특히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를 지명한 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를 두고 대통령 인사권 침해 논란도 나왔고, 검찰의 부당한 정치개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과거 정부에서는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 있는 인물이 고발을 당하더라도 사건을 배당한 뒤 최소 몇 개월을 끄는 게 보통이었다. 예를 들어 2013년 1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협의해 인선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전부터 특정업무경비 횡령 혐의가 불거졌다. 청문회 이후 이 전 후보자는 낙마하는데 검찰은 2014년 9월에야 시민단체 등에 의해 고발된 이 전 후보자를 소환조사한다. 검찰 고발을 자주하는 시민단체나 야당은 언론에 의혹이 나오면 공직 후보자를 곧바로 고발 조치하지만, 대통령 지명 인사에 대한 수사는 그렇게 빨리 이뤄지지 않는 게 보통이다. 검찰은 2014년 12월에 이 전 후보자를 무혐의 처분한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 전 후보자 이름이 없을 때쯤 사건을 처리한 것이다. 이 사건 외에도 인사청문회 때 떠들썩했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도 매우 잦았다. 그리고 실제 범죄 혐의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아주 신속히 이뤄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전례가 있었다. 바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례였다. 검찰은 2018년 4월 13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고발된 사건과 관련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지 단 하루만이었다. 이 수사는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가 담당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기업금융 범죄를 담당하며 특수부 역할을 했다. 압수수색 대상은 김 원장이 활동했던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 모임 더좋은미래와 우리은행 본사, 한국거래소(KRX) 부산 본사와 여의도 사무소, 대외경제연구원(KIEP) 등이었다. 김 원장은 2012년~2016년 19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이 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에는 이런 식의 출장이 많았었는데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것이다. 압수수색 소식이 전해졌을 때 청와대 사람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검찰이 이렇게 신속하게 수사를 할지는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김기식 원장은 압수수색이 있기 2주 전에 임명됐었다. 금융감독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청문회 없이 임명됐다. 김 원장은 참여연대 출신의 대표적인 진보 인사이고, 국회 정무위 간사 활동을 할 당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입법을 주도했다. 금융계 주류 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보수층의 저항감이 큰 인물이었다. 김 원장 임명을 발표하자 야당과 언론은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김 원장에 압수수색이 실시되기 전 언론에서는 집중적인 의혹 제기가 있었다. 핵심은 김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부적절한 출장비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연일 의혹이 제기됐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김 원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했다. 국회 정무위 피감기관들로부터 출장비를 받았고, 이는 대가성이 있는 뇌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김 원장과 여당에서는 과거 피감기관의 돈을 출장을 간 것이 관행이었다고 이를 뇌물로 보는 것은 억지라는 시각을 보였다. 여당에서는 국회의원 출장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말도 나왔다. 김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간 출장 목록들이 하나씩 보도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출장에 동행한 인턴이 보도의 초점이 됐다. 동행했던 여성 인턴이 출장 후 바로 9급 비서가 됐다는 것이었고, 어떤 보도에는 김 원장과 여성 인턴 둘만 출장을 같이 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김 원장의 뇌물성 출장 의혹이라는 본질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어느 순간 김 원장 관련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사거리가 되는 상황이 됐다.     

 김기식 원장이 뉴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돼 있을 때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김 원장의 거취는 당연히 문제가 됐다. 검찰 수사를 받는 사람이 금감원장으로 앉아 있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검찰의 신속한 압수수색은 이러한 공격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규모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검찰 수사의 신속성, 언론의 관심도 등을 고려했을 때 김 원장 사건은 여러 가지가 조국 전 장관 사건과 닮았다. 이들에 대한 집요한 공격을 두고 비주류 외부 인사에 대한 금융권과 법조계 기득권의 저항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던 날,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 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결국 검찰 압수수색 3일 만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 해석에 따라 사임했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의원 후원금 5000만 원을 자신이 활동하던 의원 연구모임 더미래연구소에 기부했는데 이를 위법이라고 중앙선관위가 판단한 것이다. 선관위는 일반적인 범위의 회비를 기부자들로부터 모은 후원금으로 납부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를 벗어난 거액의 후원금은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에 따라 김 원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수리됐다. 김 원장은 사퇴하면서도 위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김기식 원장이 사퇴하자 비난 여론은 차츰 잦아 들었다. 이후에도 야당과 언론에서는 수사가 빨리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가끔씩 나오긴 했지만, 여론의 관심에서는 점차 멀어져 갔다. 검찰은 수사에 돌입한 지 9개월이 지난 2019년 1월 김기식 전 원장을 벌금 3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수사 돌입 당시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용두사미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결과였다. 일부 언론 등에서는 살아 있는 권력을 봐줬다는 지적을 했다. 김 전 원장은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검찰보다 김 전 원장의 행위를 더 악질적으로 봤다. 2020년 9월 항소심 재판부는 셀프 후원이 선거법 위반이 된다고 1심과 같이 판단했지만, 1심형이 너무 세다고 보고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약식기소를 한 것과 비슷한 양형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원장은 여전히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검찰 수사 단계와 법원 재판 단계에서 묘하게 사건 이름이 바뀐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외유성 출장비 지원, 뇌물 의혹 등이 부각됐지만 2심 판결이 진행될 쯤 대부분의 언론이 '셀프 후원‘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벌금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언론과 야당이 집중적으로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 압수수색의 초점이었던 출장비 후원금 의혹은 검찰 수사 단계에게 이미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검찰은 “출장 자체가 목적에 맞게 행사된 게 많아서 전체 행사를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출장 일정이 취지에 맞고 진행됐고, 출장비도 유용된 사실 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검찰은 분명히 이 사건 수사에 돌입할 때 김기식 전 원장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봐줄 생각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신속하게 수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나 여당은 검찰에 압력을 넣지 못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수사에 나선 것은 전적으로 검찰의 판단이다. 타이밍도 검찰이 정했다. 청와대나 여당이 개입했다면 취임한 지 2주 된 금감원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는 김 전 원장의 사퇴 여론에 기름을 붓는 행위였다. 검찰이 압수수색까지 나서자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도 김 전 원장을 사퇴를 촉구했다. 검찰은 출장 문제와 관련한 기관도 모두 압수수색했고, 사퇴 전 언론의 의혹 보도는 출장 관련된 사안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수사 결과에는 출장과 관련된 범법 행위는 없었다.

 검찰은 처음에 봐줄 생각이 없었는데 수사를 해보니 법리 적용도 쉽지 않고, 사퇴도 했으니 적당히 하자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권력으로부터 선처하라는 어떤 압박을 받은 것일까? 이 정부 들어 살아있는 권력을 대한 검사들의 태도를 봤을 때 둘 다 아닐 것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남부지검이 김기식 전 원장의 출장비 뇌물수수 의혹을 기소하지 않는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1명을 더 언급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검찰은 당시 김 전 원장과 같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출장비를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로 고발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던 2015년 2월 국토부 산하 한국공항공사로부터 1000여 만 원의 경비 지원을 받아 미국·캐나다로 출장을 떠난 것과 관련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됐다. 검찰은 다른 검찰청에서 수사한 다른 외유성 출장 의혹 관련 고발 사건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 수사 결과는 피감기관의 돈으로 간 출장은 관행이라는 점을 인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 전 원장을 기소하면 비슷한 행위를 한 전·현직 의원이 무더기 기소를 피할 수 없었다. 김 전 원장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춰 봤을 때 평균은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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