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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3. 환경부 블랙리스트(2019년 3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살아 있는 권력의 본격적인 직권남용 수사 신호탄이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건은 모두 두 사람이 임명직 공무원이 되기 전 사건이 중심이었다. 국회의원 시절 일어난 일이 수사의 초점이 된 것이다. 전 전 수석 사건에서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를 포함하기도 했지만, 사건의 중심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부터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면서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기 시작하다.     

 2018년 12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로 검찰 수사까지 이어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논란의 연속이었다. 환경부 문건의 폭발성은 그 작명이었다. 청와대 특감반에서 환경부를 담당했던 김 전 특감반원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의 문건을 환경부 관계자로부터 건네받았고, 나중에 특감반원에서 검찰로 원대 복귀되자 이 문건을 폭로했다. 환경부는 해당 문건을 김 전 특감반원의 요청으로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어쨌든 환경부가 작성한 문건이었고, 산하기관장들의 사표 종용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문건은 야당과 언론 등에 의해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명명됐다.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휘발성이 컸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 등이 연루돼 구속됐던 문화예술계 인사 '블랙리스트'는 정부 지원 배제 명단이었다. 이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문화예술계 인사로 모두 민간인들이다. 정부 부처에서 산하기관장들의 이름을 올린 리스트와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환경부는 과거 정부에서도 작성됐던 것처럼 똑같이 문건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해명을 했지만, 야당과 언론은 연일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도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정치 권력의 제동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정부에서도 전 정부 인사 몰아내기는 자주 있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전 정권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장이 문제가 됐었고, 당시 언론들은 코드가 안 맞는 전 정권 인사는 물러나는 것이 맞다는 식으로 사설을 써 정부를 거들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19년 2월 이 같은 내용을 정리해 기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2008년 3월 6일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썼다. 중앙일보는 같은 해 3월 13일 자에 ‘코드인사와 임기보장...하자있는 인물,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바른 처신’이라고 사설을 올렸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공개적인 발언도 했다. 과거에는 공개적인 공공기관장 사퇴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약 10여 년 사이에 세상의 기준이 바뀐 것은 확실하고, 범죄의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환경부 문건이 과연 범죄 수사 대상인지는 여전히 논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 검찰 수사에 이은 법원의 판단도 엇갈렸다. 검찰은 문건 작성을 분명한 범죄 행위로 봤고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에 맡겨졌다. 서울에는 중앙, 동부, 남부, 북부, 서부지검(설립시점 순)이 있는데 이 중 최대 조직인 중앙지검에만 특수부가 있고 나머지 지검에서는 형사부 하나가 특수 사건을 담당했다. 동부지검 형사6부는 동부지검의 특수부 격이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수사의 주 타깃이었다. 청와대는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고 항변해 봤지만, 언론과 검찰은 모두 믿지 않는 기류가 우세했다. 김 전 장관에게 출국금지가 내려지고, 자택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 전 장관에게 2019년 3월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여기서 한 차례 반전이 일어난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이한 것은 영장 전담 판사가 기각 이유를 상세하게 기재한 것이었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판사는 462자에 이르는 기각 결정 이유를 언론을 통해 알렸다. 박 판사가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김 전 장관이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적다”라고 적은 것까지는 일반적이다. 박 판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 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 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사정 등을 감안해 볼 때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또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 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 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직권남용의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실질 심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범죄 혐의 소명, 증거 인멸이나 도망의 염려 등만을 살피지만 사실상 검찰의 기소가 잘못돼 무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기각 결정문이었다. 정당한 인사권 행사였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논리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야당과 일부 언론은 박정길 판사가 운동권 경력이 있고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기각 후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주진우 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기소 후 안동지청장으로 발령이 났고, 직후 사표를 던졌다. 인사에 대한 불만이라는 게 언론의 해석이었다. 언론에서는 정권이 자신들을 불편하게 한 주 부장검사에게 좌천성 인사를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2019년 9월 열린 첫 재판에서 재판장이 검찰의 공소를 강하게 비판한다. 서울중앙지법의 부패 사건 전담인 형사25부 송인권 부장판사는 “검찰 공소장에 장황한 표현이 많고, 모순되는 내용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공소장 화면을 법정에 띄워 “따옴표가 계속 나온다. 대화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인데, 판사 생활 20년 하며 이렇게 상세하게 대화 내용이 나오는 공소사실을 본 적이 없다”며 “공소사실 자체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산만하다. 피고인들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기재됐다”라고 말했다. 또 김 전 장관 지시로 한국환경공단 전병성 전 이사장의 사표 제출을 종용한 박천규 전 차관을 언급하면서 “피고인들이 텔레파시를 쓴 것이 아니라면 박 전 차관의 행위 없이는 범행 성립이 불가능했다. 박 전 차관에 관한 아무런 형법적 평가가 없다”며 “그가 피고인들과 공모한 것인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도 말했다. 사실상 검찰에 협조적인 진술을 한 인물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해 선택적 기소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해당된다. 검찰은 과거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 준 사람은 봐 준다는 의혹을 받아 왔었다.

 송인권 부장판사가 지적한 핵심 문제는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 위반이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형사소송법 상 개념으로 공소장에는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재판장이 피고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은 쓰면 안 되고,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만 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판사가 선입견 없이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은경 전 장관과 신미숙 전 비서관 사건에서는 '두 사람이 권한을 남용해 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는 등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내용만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건에서 검찰은 이 원칙을 잘 지키고 있으며 1~2쪽으로 끝나는 공소장도 많다. 예전에는 공소장을 아주 긴 한 문장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공소장은 공소장 길이만 55쪽에 이른다. 공소장에는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이 "청와대 추천 후보자가 최종 후보자로 추천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다 해 주어라", "기관 이사장직에 OO이 청와대 추천자로 정해졌다",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사가 한국당 출신보다 못해서 떨어진 것인가" 등의 발언을 한 내용 등이 적시돼 있다. 피고인의 인성 등에 대해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반인들이 어떤 사건을 판단할 때도 행위 자체보다 행위자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행위자에 주목하면 사리 판단을 그르칠 때도 많다. 그래서 재판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증거인멸 등과 함께 공소장 일본주의는 문재인 정부 검찰의 키워드 중 하나다. 주요 사건에서 계속 논란이 됐다. 앞서 서술한 사법농단 사건에서 특히 문제가 됐었다. 과거와 같이 금품 등이 오가는 비리라면 공소장을 쓰기 쉽겠지만, 직권남용 기소가 많아지면서 범행의 동기를 쓰려다 보니 거의 한편의 논문 수준으로 공소장을 쓰게 되는 것이다. 공소장에 나오는 표현들이 과연 범죄 사실과 관련 있는지 논란이 거듭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본인의 공소장에 범행 동기·배경 등이 너무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에서 ‘양승태 대법원에서 상명하복 풍토가 조성됐다’,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등 검찰의 판단이 들어가 있는 문구가 많다며 이를 삭제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역시 사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을 주장했다. 임 전 차장 측은 검찰이 기초사실이라며 ‘사법부의 대내외적 환경', '최대 역점사업인 상고법원의 도입 추진', '내부 비판세력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의 출범' 등을의 내용을 쓴 것은 직접적인 공소 사실과 관계없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검찰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장기간에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은밀히 벌어졌던 범죄 행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서술 방식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이 수사한 사건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에서 공소장 일본주의 논란이 벌어졌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논란은 피고인들의 의례적인 방어 논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재판을 실제로 들어가는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최근 들어 검찰이 범죄 수사 배경 등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서술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다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돌아오면, 1심 판단은 앞선 법원의 판단을 완전히 뒤집는다. 김은경 전 장관의 영장을 기각했던 판사,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를 지적했던 판사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는 판사도 있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송인권 부장판사가 인사이동을 하면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를 맡은 후임 판사들(김선희 임정엽 권성수 부장판사)은 전혀 다른 판단을 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하고, 이렇게 해서 공석이 된 공공기관 임원 자리에 청와대와 환경부가 점찍은 인물들을 앉혔다는 혐의로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김은경 전 장관은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함께 기소된 신미숙 전 비서관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은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 판단을 최종적으로 기다려 봐야 할 것이다. 과거 사례가 별로 없는 사건이고, 1심 판결에 이르는 과정까지 판사들의 판단이 극과 극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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