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환 Sep 13. 2021

#5. 유재수 감찰 무마(2019년 1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은 2019년 10월 조 전 장관이 임명 35일 만에 사퇴하고, 부인 정경심 교수가 같은 달 구속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사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의 주요 피의자는 정 교수였다. 사모펀드 투자를 결정하고, 자녀들의 입시 스펙을 챙긴 주동자는 정 교수였던 것이다. 조 전 장관의 비리는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딸 장학금 문제 등이 있었지만,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의혹 등에 비하면 작은 문제로 보였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 관련해 캐비닛 속에서 묵혀 있었듯 한 사건을 꺼내 들었다. 앞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등장했던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제기했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수사가 조 전 장관 일가 비리 수사 이후 급진전된다. 이 사안은 2018년 말 폭로된 사건들로 수사가 거의 진행되지 않다 조 전 장관이 후보자로 임명되고 검찰이 수사하는 것을 계기로 본격화된다. 모두 조국 민정수석 재임 시절과 관련된 일로 이 때 사건이 본격화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서울중앙지검이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부정 투자와 입시비리 혐의에 대해 수사하던 도중 서울동부지검은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를 착수했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은 2018년 12월에 감찰 무마가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이 폭로한 사건은 줄곧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해 왔다. 검찰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데 이어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을 본격 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로 파견을 갔고, 노 전 대통령 수행비서 업무를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늘공’(직업 공무원) 중에서는 가장 유력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다. 유 전 국장은 노무현 정부 근무 경력으로 인해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인사들과 상당한 인맥이 있었다. 폭로의 핵심은 유 전 국장이 뇌물수수 등의 비리가 있었는데 정권 핵심 실세 인사들이 봐주기 감찰을 했다는 것이었다. 김 전 특감반원의 폭로가 나오자 청와대는 유 전 국장이 감찰이 시작되자 휴가를 내는 등 감찰을 회피해 강제 조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 등을 할 수 있는 검찰과 달리 감찰을 하는 행정기관은 조사권이 제한돼 있다. 유 전 국장은 감찰 조사를 피하다 사표를 제출했고, 청와대는 감찰을 마무리했다는 게 해명이었다.     

 검찰의 수사는 유재수 전 국장부터 시작됐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이 사건을 제기한 지는 제법 됐지만, 유 전 국장은 조국 전 장관 수사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별다른 조치를 받은 적이 없다. 유 전 국장은 금융위를 사직한 뒤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거쳐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돼 있는 상태였다. 조국 전 장관 일가가 수사를 받자 유재수 부시장은 다시 뉴스의 인물이 됐고, 검찰은 정경심 교수가 구속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9년 10월 30일 유 부시장과 관련 있는 업체 4곳을 압수수색한다. 이어 유 부시장의 전 근무지였던 금융위원회, 자택 등도 추가로 압수수색을 진행한다. 유 부시장은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부산시로부터 직권 면직된다. 유 전 부시장은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5000만 원 정도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한다.     

 유재수 전 부시장이 구속되자 조국 전 장관에 수사가 본격화된다. 검찰은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원회에 사표를 내는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을 비롯한 정권 핵심 실세들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가 있었다고 의심했다. 사표를 받는 선에서 끝내지 않고 검찰 고발 등으로 이어져야 했는데 적당히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 등의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의 다른 살아있는 권력 수사처럼 핵심 혐의는 직권남용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직권남용은 확립된 판례도 적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검찰은 거침이 없었다. 검찰은 이 일과 관련해 조 전 장관을 두 차례 소환조사했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법원은 “이 사건 범죄혐의는 소명되나 수사가 상당히 진행된 점 등 사정에 비춰볼 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영장전담 판사는 조 전 장관이 충분히 죄가 될 수 있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봤지만,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없다고 보고 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 사안에 대해 판단을 여러 번 달리 해왔다. 앞서 서술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영장 전담판사는 죄가 안 된다고 봤지만,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 것은 물론 죄질이 안 좋다며 실형까지 선고했다. 이 사건의 유·무죄 판단 여부는 재판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은 유재수 감찰 무마 범죄 혐의를 부인했다. 1심부터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비서관을 했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은 현격한 인식의 차이를 드러냈다. 박 전 비서관은 재판에서 “유재수의 혐의가 상당 부분 입증돼 감찰 협조가 안 되면 수사 의뢰나 감사원 이첩, 금융위 이첩 등 후속조치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유 전 국장 혐의가 중대해 사표를 받는 선에서 끝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박 전 비서관은 유 전 국장 감찰에 대해 많은 압력이 있었다고도 증언했다. 반면 백 전 비서관은 "본인도 도망갈 정도고 더 감찰 진행이 안 되니 빨리 도려내야 한다, 시간을 질질 끌면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된다고 (조국 민정수석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반부패비서관은 더 엄정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민정비서관은 사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하자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증언을 종합해 봤을 때 조국 민정수석은 백원우 비서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조국 전 장관은 유재수 전 부시장을 봐주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하고 있다. 로비로 인한 판단도 아니었다고 재판에서 계속 주장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은 2017년 적폐청산이 진행되고 있었고, 공무원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을 무조건 형사처벌을 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백 전 비서관의 판단이 공감해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는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 등장한다. 2020년 6월 5일 열린 재판에서 유재수 감찰에 관여했던 전 특별감찰반원이 증인으로 나오는 재판이었다. 검찰 수사관으로 특감반으로 파견을 나갔던 이모 씨는 재판에 나와 재판에 오기 전 검찰에 가서 조사받았던 내용을 한 번 확인하고 왔다는 사실이 공개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흔히 나오는 검찰의 ‘진술 관리’가 의심 가는 대목이었다. 세상의 관심을 많이 받는 사건에서 주요 관련자가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뒤집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검찰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재판에서는 법정에서 한 진술을 우선 시 한다. 과거 한명숙 전 총리 재판 등에서 검찰은 주요 증인이 말을 뒤집어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조국 재판의 증인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전 검찰청에 가서 자신의 진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은 검찰의 진술 관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장도 당황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 김미리 부장판사는 “법정에 나오기 전 증인들이 검사실에 가서 조서를 확인하는 게 가능한 일이냐”며 “이런 증인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적 근거가 있다고 말했지만, 재판장은 의심 서린 시각을 드러냈다. 김 부장판사는 다음 공판에서 “이 사건은 매우 조심스러운 잣대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개혁을 시도한 피고인(조국)에 대한 검찰의 반격이라 보는 일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는 또 “자칫 잘못할 경우 (검사의) 진술 회유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참고인 조사를 하지 않은 증인만 검사의 사전 면담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 변호인 측은 해당 증인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는 말까지 했다. 즉 개인적인 문제로 조 전 장관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건으로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검찰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해 증인으로 나왔고, 또 증언을 하기 전에 검찰청에 들렀다고 한다면 재판장의 의심도 당연히 합리적일 것이다. 재판장의 지적에 대해 검찰은 “유리한 증언을 얻으려 상대를 회유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검사는 검찰이 신청한 증인에 대해 적절한 신문이 이뤄지도록 준비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은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들도 감찰 종료 과정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고,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진술 관리 의혹까지 나왔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관행이 그대로 적용된 측면이 있다. 감찰이 진행되다 해당자의 사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공직 사회에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재수 전 부시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다. 유 전 부시장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유 전 부시장은 자신에게 돈을 건넨 사람들이 대가성이 없이 돈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이 많은 지인들이 공직자인 자신에게 대가 없는 돈을 줬지, 뇌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돈은 건넨 사람과 유 전 부시장이 잘 알고 있는 관계가 맞지만, 이들의 회사에 유 전 부시장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1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조국 전 장관은 설전을 벌인다. 조 전 장관은 “유재수 사건은 2017년 하반기에 민정수석실에서 100분의 1도 안 되는 비중이었다”며 유재수 전 부시장을 의식하고 처리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너무 모순된다. 100분의 1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서 한편으로는 특별감찰반이 참여정부 인사들로부터 압박받는 상황이라 백원우 전 대통령민정비서관을 조인(참여)시켰다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에 조 전 장관은 “그게 왜 모순입니까”라며 “계속 모순된다고 하는데 의도적 혼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검찰은 청와대가 특정 집단에 의해 돌아갔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 핵심에 있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서로 뒤를 봐주고 끌어주고 하는 분위기였어야 직권남용이 쉽게 성립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법농단 수사 당시에도 검찰은 범죄의 배경을 공소장에 길게 적어 피고인 측으로부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이라는 반발을 샀다. 직권남용 범죄에는 전제조건이 많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직권남용 수사가 쉽지 않고,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다. 이 재판은 양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 정경심 교수 재판처럼 1심 결과만으로 모두의 승복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긴 재판이 예상된다.

이전 13화 #4. 조국 법무부 장관(2019년 8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