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환 Sep 13. 2021

#7.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2020년 1월)

 2020년 1월 새해 벽두에 검찰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법안 상정 과정에서 빚어진 여야의 물리적 충돌에 대해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사건은 야당이 반대하는 공직선거법과 공수처설치법을 여당이 단독처리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사건은 구체적으로 봤을 때 다소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여당이 법안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야당이 물리적으로 이를 저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당도 물리력을 행사했다.     

 과거에도 국회에서 국회의원, 보좌진, 당직자 간 물리적 충돌 사태는 있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에 극에 달했다. 예산안 등을 처리할 때마다 몸싸움은 빠지지 않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 과정에서는 유명한 해머 사건도 등장했다. 2008년 민주당 소속 문학진 의원이 상임위 회의장에서 문을 잠그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회의를 진행하려고 하자 해머로 문을 내리친 것이다. 2011년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리기도 했고, 같은 당 강기갑 의원은 국회 사무총장에게 항의하다 ‘공중부양’ 사건이 나기도 했다. 지금의 종합편성채널 탄생을 가능하게 한 미디어법 등은 여야의 치열한 몸싸움 끝에 여당인 한나라당이 단독처리했다. 이러한 ‘동물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드세졌고, 과거와 달리 국회 내 폭력에 대해서도 수사의 칼날이 들어왔다. 2012년 18대 국회 마감을 앞두고 여론에 밀려 여야는 더 이상 몸싸움을 그만 하자는 데 합의한다. 그에 따라 나온 게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이용해 법안을 단독 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천재지변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소수당의 물리적 저지를 막기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추면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일정 시일이 지나면 본회의 표결이 가능하게 했다. 이에 더해 소수당이 물리적 저지를 할 경우 강한 처벌 조항을 넣었다. 국회에서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경우 최대 7년의 징역형 또는 2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이 생기면서 국회에서 폭력은 한동안 사라졌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당에서 중점 추진하는 법안이 지연되는 경우가 잦아져 ‘식물국회’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물리적 폭력이 사라졌다는 것은 국회의 큰 발전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된 이후 7년 여 만에 국회에서 처음으로 폭력 사태가 났다. 2019년 4월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등이 국회에서 회의를 못 열게 할 목적으로 물리력을 동원했다. 이는 국회선진화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 위반 행위였다. 민주당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등을 주동자로 지목하고,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한국당 의원들을 대거 고발했다. 한국당도 민주당 의원 등이 물리적 충돌 과정에서 폭력 행위를 저질렀다면 맞고발로 대응했다. 여러 가지 고소, 고발이 이뤄지면서 총 18건에 달했고, 국회의원 관련자만 109명에 이르는 대형사건이 됐다. 선진화법 위반이 첫 적용되는 사례이기 때문에 세상의 관심이 집중됐고,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2020년 21대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은 경찰이 맡았다. 검찰은 단순 폭력 사건 등은 보통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 국회 내 폭력이라는 특수한 사건이지만, 과거에도 이런 사건은 경찰이 주로 맡았다. 경찰은 국회 폐쇄회로(CC)TV와 방송사 취재 영상, 국회 출입 기록 등을 분석해 수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고발 당한 의원들에게 소환 조사를 통보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경찰에 출석했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출석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 한국당 의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수사는 큰 차질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7월말 취임했고, 9월이 되자 경찰에게 사건을 넘기라고 요구한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총선 일정 등을 고려했을 때 사건을 더 이상이 지체하기 어렵고 선진화법 위반 첫 사례이기 때문에 검찰도 법리 검토를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사건 일괄 송치를 지휘했다. 경찰은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법상 검찰이 수사 지휘를 해 사건을 넘기라고 할 경우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면서 출석을 거부하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자진 출두했다. 자기들이 책임 지겠으니 소속 의원들은 검찰 조사를 받지 말고, 검찰에게도 수사를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검찰은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등 의원 23명을 국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와 함께 이종걸 의원 등 민주당 의원 5명도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한국당 의원 13명을 정식 재판을 받게 됐고, 10명은 약식기소됐다. 민주당은 의원 4명이 정식 기소 됐고, 1명은 약식기소됐다.     

 이 같은 수사 결과에 대해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당직자와 보좌진까지 포함했을 때 한국당은 16명 불구속 기소, 11명 약식기소, 48명 기소유예였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8명 불구속 기소, 2명 약식기소, 40명 기소유예였다. 정치적 이유는 차치하고 이 사건의 물리적 충돌을 일으킨 쪽은 한국당이었다. 기소유예까지 포함했을 때 야당 못지않게 여당에 강한 책임 물은 결과로 보인다. 야당 의원들은 강한 처벌 조항이 있는 선진화법 위반이었고, 민주당은 일반 폭력행위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형평성 의혹을 제기할 수 있었다. 기소된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민주당이 편파적 수사를 의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민주당에서 기소된 의원은 이종걸·박범계·표창원·김병욱 의원이었다. 박주민 의원은 약식기소됐다. 변호사 출신인 이종걸 의원은 검찰개혁을 자주 언급하고 20년의 의정활동 동안 검찰과 각을 많이 세운 사람이었다. 박범계 의원 역시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으로 검찰개혁을 강하게 주장해 온 사람이었다. 박 의원에 후에 법무부 장관이 되고, 기소된 사람이 법무부 장관을 한다는 논란이 나왔다. 표창원, 박주민 의원은 당시 검찰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법사위 소속 의원이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조 전 장관을 옹호한 사람이다. 김병욱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회 법사위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고 검찰을 불편하게 하는 말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한국당 소속으로 법사위원장이었던 여상규 의원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기소했다. 여 의원은 바른미래당 소속이었던 채이배 의원을 회의에 참석하게 못할 목적으로 의원회관 사무실로 찾아가 감금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는 뉴스 영상으로 다 공개됐다. 당시 영상 속에 나왔던 대부분의 의원은 기소됐지만, 여 의원은 빠졌다. 검찰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해 행위가 중한 사람을 기소했다는 다소 애매한 설명이 뒤따랐다. 자의적이라는 의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여 의원은 법사위원장을 하면서 여당에 맞서 검찰의 입장을 여러 차례 대변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심이 퍼졌다.     

 패스트트랙 수사는 사건 발단에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외부적 변화가 컸다. 수사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건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국회는 영등포경찰서와 서울남부지검 담당이다. 그런데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7월 말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검찰이 경찰에게 사건을 검찰로 넘기라고 지휘권을 행사한 날은 공교롭게도 조국 법무부 장관의 취임일이었다. 검찰의 송치 요구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윤 총장은 이 때 이미 여당 사람이 아닌 야권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기였다. 검찰이 사건 수사를 발표한 날은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였다. 이 역시도 묘한 타이밍이다. 여당에서는 공수처법이 통과된 다음날 상대적으로 여당에 불리한 수사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검찰은 경찰과 수사권 조정을 할 때마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절대 내놓지 않으려 했다. 선거법 사건은 정치인의 목줄을 잡고 있을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2014년 이낙연 전남지사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 측근이 구속됐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가 됐다. 검찰 단계에서 이 지사에게는 무혐의 결론이 났다. 대신 경찰 단계에서 주목받지 않았던 권선택 대전시장이 기소된다. 이 지사는 이후 총리를 지내고 여당의 대선 주자가 됐다. 권 시장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시장직을 잃었다. 당시 검찰이 이 지사에 대해 기소 결정을 내렸다면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무도 장담 못할 것이다. 과거 검찰에서는 빅4라고 불리는 직책이 있었다. 대검 중앙수사부장과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이다. 중수부장는 정치인과 기업인이 연루된 대형 사건을 수사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법무부 검찰국장은 인사를 하는 자리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전국 최대 검찰청으로 다양한 사건을 지휘한다. 대검 공안부장은 선거 사건의 기소 대상자를 최종 결정하는 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전국의 검찰청별로 수사가 이뤄지지만,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은 대검 차원의 의사 결정을 거쳐야 한다. 공안부는 선거가 계속 있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주기적으로 한다. 패스트트랙 사건은 선거법 사건이 아니지만 정치인 중 기소 대상을 고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검찰의 아주 고전적인 정치인 선택 기소 관행이 작용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사건이다.

#8.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2020년 11월)     

 윤석열 검찰총장은 2020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야권 지지자들도 큰 주목을 받

이전 15화 #6.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2019년 11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