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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8. 월성 원전(2020년 11월)

 윤석열 검찰총장은 2020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야권 지지자들도 큰 주목을 받았다. 2020년 초부터 윤 총장을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언급하는 경우가 생겼다. 야당은 계속 지리멸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존재로 검찰과 윤 총장이 떠오른 것이다. 2020년 4월 총선 결과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고, 야당은 더욱 존재감이 없어졌다. 야당의 지지자들이 기댈 곳을 잘 찾지 못하는 시기였다. 검찰과 윤 총장의 존재감은 여당의 압승 뒤에 더욱 커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싸움은 정국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굳건하게 버티는 윤 총장의 모습에 야당 지지자들은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검찰은 수사로도 여전히 정권을 견제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다시 시작했다. 총선 6개월 후에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을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감사원 감사였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 중 하나였다. 모든 언론이 문재인 정부 초기 우호적 기사를 쏟아냈지만, 보수 언론은 이때부터 탈원전에 대해서만은 의문점을 표시하는 기사를 썼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한 달 여만인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에 내려가서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핵심 국정과제로 올려놨고, 반대 편에 선 사람들도 극렬하게 반대했다. 이 이슈는 감사원을 거쳐 검찰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 사건 수사는 시기 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와도 맞물린다. 언론에서는 원전 관련 수사를 계기로 추 장관이 윤 총장 징계를 시도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나중에 문재인 대통령도 “원전 수사 등을 보면 검찰이 청와대 권력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2018년 6월 원전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한수원은 당시 폐쇄를 결정하면서 “월성 1호기는 후쿠시마 사고 및 경주 지진에 따른 강화된 규제환경과 최근의 낮은 운영 실적 등을 감안할 때 계속 가동에 따른 경제성이 불확실해 조기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월성 1호기는 2012년11월 설계수명(30년) 만료로 가동 중단되는데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22년 11월까지 연장운전을 허가한다. 이에 진보 시민단체들이 이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내고, 서울행정법원은 2017년 2월 수명연장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다. 즉 월성 1호기는 노후 원전이고 이를 계속 가동할지 말지에 대해서 논란이 돼 왔다. 원전을 확대하자는 쪽에서는 안전성과 경제성에 문제가 없으니 계속 가동하자고 했고, 탈원전 진영에서는 조기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계속 가동하기 했는데 법원에서 제동을 걸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감사원 감사는 야당의 요구로 시작됐다. 2019년 9월 여야 합의로 국회는 한수원에 대한 감사 요구를 의결한다. 감사원은 과거 살아있는 권력의 정책에 대해서는 감싸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강도 높은 감사가 진행됐고, 감사 기간도 길어졌다. 한수원의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감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적지 않은 논란이 시작됐다. 여당은 아마 이런 감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야당의 한수원 감사 요구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감사가 정부나 여당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감사원장이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30년 이상 법관으로 재직한 인물로 법원에 있을 때는 외부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별로 튀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얘기다.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그 나이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법관 정도로 여겨졌다. 최 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인사망에 어떻게 걸려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최 원장은 2017년 12월 임명 당시 고교 재학 시 친구를 업고 다녔다는 일화, 자녀를 2명 입양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오랜만에 청와대가 제대로 인사를 발굴했다는 평가까지 나왔었다. 진보적 색채가 없었기 때문에 보수 언론의 평가도 괜찮았다. 하지만 최 원장은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2019년 9월 감사가 의뢰될 때 감사는 3개월 예정이었지만, 감사원은 그해 말 국회에 감사기간 연장을 요청한다. 그 이후로도 감사 결과 발표는 계속 미뤄졌고 2020년 10월에야 감사결과 보고서가 감사원 감사위원회를 통과하고 결과가 발표된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사 과정에서 감사원의 강압적이고 부당한 감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2020년 7월 “최 원장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 과제가 국민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최 원장은 이에 대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감사 과정에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사안이라는 말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41% 정도의 지지를 받았는데 국민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냐는 취지로 말했고 국정과제를 폄하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송 의원은 또 최 원장이 4월 총선 전 감사 결론을 맺으려 했으나 감사위원들이 무리한 결론이라고 반박해 발표를 못했고, 총선 후 담당 국장까지 바꿔 정해진 결론에 맞는 결과를 내놓으려 한다고도 주장했다. 최 원장은 이를 부인했다. 최 원장은 감사 결과 발표가 지연되는 데 대해 “이렇게 (피감사자들의)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며 "산업부 공무원들이 관련 자료를 거의 모두 삭제했다. 포렌식으로 이걸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언급했다. 감사 결과 발표 전 청와대와 최 원장이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의 감사위원 임명을 놓고 갈등을 빚은 사실도 공개됐다. 우여곡절 끝에 발표된 감사 결과는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면서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지만, 폐쇄 타당성에 대해서는 감사 범위를 벗어난다며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감사원은 “가동중단 결정은 경제성 외에 안전성,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며 "안전성이나 지역수용성 등의 문제는 감사 범위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원장과 감사위원 간의 합의제 기구다. 감사위원 중 여당 성향도 있었기 때문에 일방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한수원이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며 산업부 공무원 등 관련자들을 곧바로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와 관련해 산업부 공무원들을 고발하지는 않았지만, 검찰에 수사참고자료를 보냈다. 사실상 수사의뢰와 다름 없는 행위였다. 최 원장은 고발을 하지 않았지만, “범죄 행위와 연관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자료를 검찰을 보냈다”고 국회에서 말했다. 특이한 것은 야당인 국민의힘이 이 사건을 대전지검에 고발했다는 것이다. 야당은 보통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돼 있는 사건을 보통을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유독 대전지검에 고발이 됐다. 실제 검찰도 사건을 대전지검에 배당해서 수사를 하게 한다. 검찰은 고발된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정부세종청사를 대전지검이 관할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총장이 되자 울산지검에서 수사 중이던 청와대 인사들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하게 한다. 윤 총장은 과거 전국 검찰청에서 자유롭게 검사들을 파견받을 수 있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여러 차례 근무한 경험이 있고, 중앙집중식 수사 방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서울중앙지검장 때도 삼성그룹 승계 의혹 사건, 조국 법무부 장관 사건 등에서는 검사들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집중 파견 배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대전지검으로 간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친정권 검사라고 언론이 칭했던 이성윤 검사장이엇다. 윤 총장은 ‘조국 사건’ 이후로 여권과 관계가 불편해졌고, 이 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 근무를 한 적이 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의 주요 요직을 맡았다. 여권에서는 이 지검장이 있는 서울중앙지검 대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대전지검을 택했고, 야당의 고발도 이 쪽으로 유도했다는 의심을 품었다. 국회 법사위원인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전을 방문하자마자 바로 자기 직계라고 할 수 있다는 대전지검 형사5부에 전격 배당하고 압수수색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전지검장은 윤석열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4차장, 1차장으로 같이 근무했던 이두봉 검사장이었다. 이두봉 지검장은 이외에도 여러 차례 윤 총장과 같이 일한 적이 있다. 대전지검 형사5부장인 이상현 부장검사도 역시 윤 총장과 인연이 있었다. 이 부장검사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때 윤석열 팀장과 함께 일한 검사였다.     

 사건을 맡은 대전지검 형사5부는 고발 10여 일만에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산업부 사무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사장실 등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압수수색 대상에 한국가스공사 사장실이 들어간 것은 월성 1호기 폐쇄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씨가 당시 한국가스공사 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 초대 산업부 장관이었던 백운규 전 장관과 채희봉 전 비서관을 겨냥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윤석열 체제 검찰에서 흔히 봤던 것처럼 이 수사의 초기 초점은 증거인멸이 됐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조직적으로 증거를 삭제했다는 점은 최재형 감사원장도 여러 차례 공개적인 자리에서 지적했고, 감사 결과 발표 시에도 강조했던 점이었다. 검찰은 압수수색 한 달 후인 2020년 12월 초 검찰은 감사원 자료 삭제에 가담한 산업부 공무원 3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들 중 2명에 대한 영장이 발부된다. 감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된 공무원들은 감사원 감사가 예정돼 있자 휴일에 나와 자료를 삭제한 혐의를 받았다. 공무원 3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 정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말했고, 삭제 이유를 검찰이 캐묻자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구속영장 청구 직전에 나왔다. 정확한 진술과 맥락은 알 수 없지만, 이 보도는 영장 전담 판사와 국민들에게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사건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한 수사는 자료 삭제 수사 이후 본격화됐다.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2021년 2월에 청구됐다. 백 전 장관의 혐의는 직권남용과 업무방해였다. 월성 1호기 폐쇄를 밀어붙이기 위해 한수원 관계자들로 하여금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고, 한수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혐의였다. 구속영장 심사의 결과는 기각이었다. 오세웅 대전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 범죄 혐의에 대한 검찰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여 피의자에게 불구속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백 전 장관 등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증거인멸이 문제가 돼 구속됐던 공무원들도 보석으로 풀려놨다. 이들은 백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검찰뿐 아니라 감사원도 정권, 여당과 갈등을 빚었다. 감사원도 정부기관 중 독립성이 가장 강하게 요구되는 기관 중 하나다.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요구되는 검찰총장이 2년 임기가 보장돼 있는 것처럼 감사원장도 4년 임기가 정해져 있다. 감사원은 공무원 사회에서는 저승사자다. 검찰은 법원에서 영장 발부받아야만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 감사원은 이러한 강제 수사 권한은 없지만 공직 사회에서는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고 한다. 감사원 직원이 매일 사무실에 나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안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직원이 영장도 없이 공무원 사무실에 간다면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감사원 직원이 그렇게 나가서 압박하는 것은 정당한 직무다. 검찰은 영장에 기재된 자료만 제한적으로 가져갈 수 있지만, 감사원의 자료 요구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는 말도 공무원들이 자주 한다. 감사원의 이 같은 권한을 검찰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검사 입장에서는 자료가 조금 더 있으면 실체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영장의 제한 때문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뜻과 관계없이 일부 언론에 차기 대선 여론조사 후보로까지 등장했다. 감사위원 선임을 두고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고, 이미 선임된 감사위원들과의 의견 충돌도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 무리하게 결론을 내리려 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여당에서는 독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에 독립성을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감사원이 2021년 1월 월성 1호기에 이어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 전반에 관한 감사에 나서자 SNS에 “최재형 감사원장은 명백히 정치를 하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임 전 실장은 “정보에 대한 편취와 에너지 정책에 대한 무지, 감사원 권한에 대한 남용을 무기 삼아 용감하게 정치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며 “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소신껏 일하라고 임기를 보장해 주니 임기를 방패로 과감하게 정치를 한다”고 최 원장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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