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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1. 사단(2017년 5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사실상 검찰총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임명된 지 약 3개월 후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취임했지만, 윤석열 지검장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윤 지검장이 총장과 동급으로 인식된 이유는 그의 존재감 자체도 있지만, 실상은 인사 때문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말기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극단적인 대결에는 인사 문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윤 총장과 추 장관의 본격적인 다툼을 다루기에 앞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실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검찰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이 가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과 협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검사장 이상 인사는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고, 법무부 장관이 제청한다. 공식 절차 상 서울중앙지검장은 인사 의견 개진권도 없다. 다만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차장검사 등 참모들은 지검장의 의견을 반영해 주는 관행이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지검장 당시 인사 결과를 보면 사실상 검찰총장은 윤석열이라는 말이 나올 만 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취임한 뒤 자신을 보좌하는 차장검사 3명을 모두 자신의 측근으로 바꿨다. 1차장 윤대진, 2차장 박찬호, 3차장 한동훈이었다. 윤대진 1차장은 윤 지검장과 가장 가까운 검사로 알려져 있었다. 윤 전 총장과 윤대진 검사는 대검 중수부에서 여러 차례 같이 근무하며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수사, 2011년 부산저축은행비리 수사 등을 함께 한 사이였다. 검찰 내에서는 윤 지검장은 ‘대윤’, 윤 1차장은 ‘소윤’이라고 불렸다. 거의 형제 수준이라는 말도 있었다. 훗날 윤 지검장이 총장에 지명된 뒤 열리는 인사청문회에서도 윤석열-윤대진 관계에서 파생된 문제가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였다. 윤석열 총장 후보자가 윤대진 검사의 형인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변호사를 소개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는 녹취가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해당 변호사는 윤석열 전 총장, 윤대진 검사와 함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근무한 검사 출신이었다. 윤우진 전 서장은 국세청 공무원이었는데 각종 비리 혐의로 경찰에 수사 대상에 올랐었다.

 특수부 관할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서 같이 일했던 한동훈 검사를 앉혔다. 한동훈 3차장은 2003년 SK그룹 분식 회계 사건,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2006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등을 수사할 때 대검 중수부에 있으면서 윤석열 전 총장과 오랜 인연을 쌓았다. 한동훈 3차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윤 전 총장이 지방을 떠돌 때도 요직을 놓치지 않았었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 잘나가던 검사와 대부분 멀어졌지만, 한동훈 검사는 특검이 시작되자 다시 불렀다. 서울중앙지검 때는 3차장, 총장이 되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계속 곁에 뒀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윤대진 검사보다 한동훈 검사가 윤 전 총장 가까이에 있었다. 한동훈 3차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부임 이후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하고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에 연루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밀려난다.

 2차장도 윤석열 지검장의 측근이 맡았다. 역시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박찬호 검사였다. 2차장은 공안부(현 공공형사수사부)를 관할하는 검사다. 잘나가는 검사들의 양대 축은 ‘특수통’과 ‘공안통’이다. ‘특수통’은 3차장, ‘공안통’은 2차장은 검찰 인사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중앙지검장 시절 이 원칙은 깨진다. 2차장도 특수통이 독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 특수통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박찬호 검사는 대검 중수부에 근무하면서 SK그룹 분식 회계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등을 윤 전 총장과 함께 한 경험이 있었다. 박찬호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되기 전 이렇다 할 공안부 경력이 없었다. 박 검사 역시 윤 지검장이 총장이 되자 대검 공안부장으로 같이 이동한다. 박 검사도 추미애 장관 취임 이후 제주지검장으로 발령나 중앙에서 밀려난다.     

 차장검사 아래 주요 부장검사들도 윤석열 사단으로 불릴 만한 진용을 갖췄다. 특수1부장은 신자용 검사였다. 신자용 부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 파견된 경력이 있었다. 신자용 부장은 2018년 인사에서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옮긴 윤대진 검사 아래에서 검찰과장을 하다 윤석열 지검장이 총장이 되자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간다. 특수2부장은 송경호 검사였다. 송 부장 상급자인 한동훈 3차장이 2013년 대검 정책기획과장으로 근무할 때 대검 연구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특수2부장이 된 이후로 그는 윤석열 지검장, 한동훈 3차장과 서울중앙지검에 계속 같이 있었다. 송 부장은 윤석열 총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한동훈 3차장 자리를 이어 받았다. 부장 시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등을 수사했고, 차장이 된 이후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수사를 총괄했다. 송 검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PD수첩 사건의 사실상 주임 검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수3부장은 양석조 검사가 맡았다. 양 검사 역시 윤석열 지검장 시절 보직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윤석열 총장이 되자 대검으로 자리를 옮긴다. 서울중앙지검 시절 자신의 상관이었던 한동훈 3차장과 함께 나란히 대검 반부패강력부로 간다. 한동훈 부장 밑에 2인자인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이 된다. 양 검사도 역시 비슷한 연배의 검사들 중에 돋보이는 특수통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전 총장, 한동훈 검사와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에서 호흡을 맞췄다.

 역시 3차장 산하에 있는 첨단범죄수사1부장은 신봉수 검사가 맡았다. 신봉수 검사는 BBK 특검에서 윤 전 총장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었다. 신 부장은 이듬해 특수1부장으로 옮기고, 윤석열 지검장이 총장이 되자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됐다. 윤 지검장은 총장이 되고 나서도 역시 특수통에게 2차장을 맡겼다. 신봉수 부장은 송경호 부장과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을 함께 수사했다. 차장이 되고 나서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총괄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검사들은 2017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한 이후 대검과 법무부, 서울중앙지검의 요직을 돌아가면서 맡았다.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보직 관리를 받았다. 이 외에도 윤석열 사단으로 불릴 만한 검사들이 더 있다. 대전지검장을 할 때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을 수사한 이두봉 검사도 윤석열 전 총장과 오랜 인연이 있었다. 이두봉 검사는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윤 전 총장과 함께 수사했다. 윤석열 지검장 시절 신설된 중앙지검 4차장을 맡았고, 이어 1차장을 거쳐 윤석열 총장 때는 대검 과학수사부장을 보직을 옮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있었던 굵직한 적폐,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이 사단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진다. 이 책에 언급됐던 사건들도 지금 언급된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변창훈 전 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불러왔던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박찬호 당시 2차장이 팀장을 맡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은 신봉수, 송경호 부장이 주요 라인이었다. 사법농단 사건은 한동훈 3차장이 팀장이 됐고, 신봉수 특수1부장이 그 아래에 있었다. 이 정부 첫 살아있는 권력 수사라 할 수 있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사건은 신봉수 부장이 있던 첨단범죄수사1부가 담당했다. 조국 전 장관 사건은 송경호 3차장이 총괄하고, 송 차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고형곤 특수2부장이 수사했다. 고형곤 부장도 국정농단 특검팀 출신이었다.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사건을 대검에서 지휘하는 위치였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 김태은 부장검사가 맡았다. 김태은 부장도 국정농단 특검에 파견된 경력이 있다. 김태은 부장은 2018년 윤석열 지검장 2기 때 첨단범죄수사1부장을 맡았다 이듬해 공안2부장으로 옮긴다. 특수통 신봉수 검사가 공안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김 부장도 갑자기 공안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김 부장은 윤석열 총장이 재배당한 것으로 알려진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맡는다. 전직 경찰청장 2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정보경찰 선거 개입 사건은 김태은 부장의 전임자였던 김성훈 부장이 책임자였다. 김성훈 부장은 공안통의 길을 걸어온 검사로 국정원 댓글 사건팀에 속해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윤석열 지검장이 부활하자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 공안2부장을 거쳐 윤석열 총장 시절에는 대검 공안1과장을 맡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과 이어진 승계 비리 의혹 사건은 이복현 부장이 계속 수사했다. 조국 사태 이후 인사권에 타격을 받은 윤석열 총장은 이 부장만은 남겨 달라고 법무부에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복현 부장은 현대차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농단 사건으로 네 차례 윤석열 전 총장과 함께 근무했다. 윤석열 지검장 시절 특수2부 부부장으로 시작해 특수3부장으로 영전한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왔던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을 유재수 비리를 수사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부장검사에게 다시 맡긴 것도 우연으로 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굵직한 주요 사건을 담당했거나 지휘했던 검사들은 모두 윤석열 전 총장과 이런 저런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핵심은 중수부에서 윤 전 총장과 수사를 같이 한 경력이 있는 검사,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과 2016년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 출신이었다.     

 정권을 쥔 집단도 이런 식으로 요직에 ‘이너서클’ 멤버들로 순환 인사를 하지는 못한다. 당장 코드,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를 의식하지 않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인사 의견 개진권도 없던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노골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앉혔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앞서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제청권을 가지고 있고 검찰총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보다 먼저 임명됐다. 그만큼 청와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는 얘기다. 입지가 강하지 못했던 박 장관과 문 총장은 윤 지검장의 의견을 거의 다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조국 민정수석은 정권 초반 윤 지검장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같다. 2018년 7월부터는 윤 전 총장과 가장 가까운 윤대진 검사가 법무부 검찰국장이 됐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찰 인사 실무의 최고 책임자다. 검찰 출신 이연주 변호사에 따르면 윤대진 검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자신이 검찰 인사를 다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윤대진 검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어 검사들 가운데서는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과거에는 주로 기획과 인사 업무를 많이 한 검사들이 갔다. 윤대진 검사는 대검 중수부 경력이 많은 동기 내 전형적인 특수통이었다. 특수는 물론 공안에 이어 기획 업무까지 특수통들이 장악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무일 검찰총장은 특수통들이 모든 요직을 차지하는 인사를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적절한 견제가 없이 이너서클은 강화됐고, 검찰 내에서 이러저러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특수통 출신 검사들은 철저하게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형사부, 공판부 등 언론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는 검사들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취급하는 언행을 하기도 했다. 추미애 장관 취임 이후 윤석열 전 총장 측근들을 대거 지방 발령낸 후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상갓집 사건’은 특수통 검사들의 엘리트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추미애 장관은 2020년 첫 인사에서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고, 그 자리에 심재철 검사를 임명한다. 심 검사는 전임자 한동훈 검사와 동기지만, 경력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호남 출신인 심 검사는 주로 강력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강력부는 조직폭력배 사건, 마약 사건 등을 다룬다. 심 검사도 대검,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력 관련 주요 부서에서 근무했고, 다른 검사들에 비해서는 경력 관리가 돼 있는 편이지만 한동훈 검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특수통, 공안통에 밀리는 비주류였던 것이다. 보수 정권 시절 비주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법무부 주요 직책을 맡고 추 장관이 인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서 요직에 발탁된 것이다. 심 검사는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직속 하급자인 양석조 대검 연구관과 한 상갓집에서 고성을 주고받았고, 이 사건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 검사는 조국 전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직권남용 사건에 대해 무혐의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양석조 검사가 반발했다는 것이다. 양 검사는 자신의 상관에게 “당신이 검사냐” 등의 말을 하면서 따졌다고 한다. 양 검사는 앞서 말했듯 윤석열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한 이후 그의 곁에 계속 있었던 검사였다. 윤석열, 한동훈과 함께 계속 했던 특수통 양석조 검사가 한동훈을 밀어내고 온 강력통 출신 부장에게 대든 것이다. 단순히 사건에 대한 견해 차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양 검사가 기자들까지 있는 상갓집에서 큰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상관에 대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 검사와 심 검사의 경력도 배경으로 알아둬야 한다.     

 검찰에서 특정 분야의 ‘통’으로 분류돼 일종의 이너서클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지방 근무를 하지 않는다. 과거 보직 기준으로 봤을 때 특수통은 평검사 시절 대검 중수부 연구관, 부장검사 시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검사장이 된 후 대검 중수부장이 되는 것이 엘리트 코스다. 공안통은 대검 공안부 연구관,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치면 최고 엘리트다. 기획통은 법무부 검찰과 검사, 검찰과장, 대검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대검 기획조정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의 요직을 맡았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시련을 겪기 전까지는 윤석열 전 총장도 철저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윤 전 총장은 2009년 8월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이 된 뒤 중수부 중수2과장, 중수1과장을 잇따라 맡는다. 그리고 길 건너에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했고, 수도권인 여주에 지청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여주지청장 시절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 돼 파견 형식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했다. 윤 전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는 윤 전 총장 못지 않은 경력을 자랑한다. 예전에 검사들은 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하면 초임을 서울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검사는 군 복무를 마친 뒤 서울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19년까지 20년 가까운 검사 경력 가운데 지방 근무를 한 것은 단 두 차례다. 한 검사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로 파견을 간 뒤 서울에서만 근무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잘 나가던 검사들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한 검사는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요직을 두루 맡았다 국정농단 특검 파견 근무를 갔다. 박근혜 정부에서 지방을 전전했던 윤 전 총장과 달리 승승장구했던 그는 특검을 거치고 난 뒤 문재인 정부에서도 최고 실세 간부로 거듭난다. 한 검사 외에도 윤석열 사단이라고 지칭되는 검사들 중 지방근무를 거의 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법무부를 왔다 갔다 하거나 지방을 가더라도 수도권 검찰청 밖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정확한 통계를 내긴 어렵지만 이러한 보직 관리를 받는 검사들은 전체 검사의 5%도 안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고 엘리트 검사 중 한 명이었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미투’ 피해를 입었다고 생방송에서 폭로한 서지현 검사는 지방근무로 인사 보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서 검사는 2015년 8월 여주지청에서 통영지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검찰은 큰 거점 도시에 지검을 두고 그보다 작은 도시에 지청을 두는데 지청은 규모마다 차이가 있다. 인구가 적은 지역의 지청은 검사 3명 정도가 근무하기도 하지만, 규모가 있는 지청은 수십 명의 검사가 있다. 서 검사는 규모가 비슷한 여주지청에서 통영지청으로 가는 인사를 좌천성 인사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가는 인사였다. 그만큼 검사들에게 인사는 민감하다. 형사부, 공판부 검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족과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2년 수도권 근무 후 2년 비수도권 근무를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연수원 성적이 좋고, 어렸을 때부터 잘 나가던 검사들은 예외 적용을 받았다.

 이러한 이너서클의 구축은 독특한 검찰 문화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와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속한 이너서클은 하나의 권력이 됐다. 역설적으로 검찰개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이너서클 권력의 재생산 시스템이 가장 활발하게 돌아갔다. 검찰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견제가 약했던 것이다. 큰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정부와 여당은 그 시스템을 멈추게 하겠다고 했다.     

 검찰의 '통' 문화는 여러 차례 법조계나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었다. 그래서 한 차례 변화가 시도됐다. 2013년 특수통이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이후 총장 자리에 오른 김진태 검찰총장 시절이었다. 김 총장은 특정 인맥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사람이었고, 형사부 경험이 많은 검사였다. 김 총장은 2014년 1월 처음 단행한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29명 전원을 다른 검찰청으로 전출 보냈고, 그중 3명만 서울에 남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공안, 특수부장 검사들도 모두 지역에 가서 형사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조국 사태 이후 강조됐던 형사, 공판부 강화 등이 이미 이때 시도됐던 것이다. 김 전 총장의 이러한 인사 시스템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부임하면서 불과 1년 만에 많은 예외를 만들어 내게 된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 가운데 3명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우 수석은 검찰 재직 시절 특수통의 코스를 그대로 밟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로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기 전만 하더라도 그의 검사장 승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박근혜 정부 첫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다시 청와대 민정비서관 발탁됐다. 민정수석으로 승진한 그는 철저하게 구 시스템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요직에 두고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김 총장까지 2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면서 하방 인사 원칙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다시 옛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한 때 자신의 상관이었고 특수통 선배였던 우병우 전 수석을 수사해 구속시켰다. 한 때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악연으로 끝난 사이고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을 극과 극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특수통의 스타일은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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