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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2. 총장 윤석열(2017년 9월)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윤석열 지검장은 2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킨다. 앞서 말했듯이 그 사이 검찰총장은 문무일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말도 많이 회자됐다. 일부 인사들이 문제가 있다는 말을 했지만, 정권과 윤석열 지검장과의 관계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여당 모두 이상한 것이 없지는 않지만 선을 넘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윤석열 지검장만한 검사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019년 7월 말로 문무일 검찰총장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새로운 총장을 지명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 당시 검찰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기류가 감지됐다. 일단 문 총장과 사법연수원 기수가 5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조직 안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법조계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지검장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기류가 있었다. 윤석열 지검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검찰 특수통의 적자였고, 검찰 주류의 생각을 전형적으로 가진 사람이었다. 그와 가까운 한 검사는 윤 지검장이 국정원 사건으로 한직을 전전하고 있을 때 “윤석열 형은 절대 진보 인사가 아니다. 오히려 극우가 가까운 사람”이라며 보수 정권에서 탄압받고 있는 사실을 안타까워 했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서는 그가 가진 생각이 이 정부의 생각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을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총장 교체기에 보수 언론에서도 윤석열이 총장이 되면 반드시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하게 될 것이고, 이를 정권이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에서 윤석열 총장에 대해 반대하는 기류가 분명히 있었고, 여러 통로를 통해 이에 대한 의견도 전달됐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였다. 민주당에서 떨떠름한 반응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2년 후에 검찰총장을 한 번 더 지명할 수 있었다. 조직 안정성 관점에서 보자면 2년 후를 기약하면 됐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윤석열이었을까?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 실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의원은 “윤석열 지검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가장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 이유를 말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검찰총장 문무일 총장은 검찰이 하지 않았던 과거 청산 작업을 하고 경찰청을 직접 방문하는 등 그동안의 검찰총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지검장보다 훨씬 눈에 띄지 않았고, 정권과 각을 세우는 일도 없었다. 같은 특수통 검사 출신이지만 결이 달랐다. 전국 검찰청에 있던 특수부 조직을 대폭 줄였고, 대검 인권부를 설치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조치들도 취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검·경수사권 조정 작업만은 예외였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부부터 추진돼 왔지만 큰 진척이 없었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폐해가 크다고 보고 경찰에게 1차적 수사권을 주고 검찰은 기소 기능을 담당하는 게 골자다. 다만 수사권 전환 과도기에 공백을 막기 위해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권을 유지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검찰의 수사지휘를 금지해 경찰의 수사 종결권을 보장하고, 대신 검찰은 경찰이 기소를 위해 사건을 송치할 경우 보완 수사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문무일 총장은 이러한 방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냈다. 문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던 2018년 3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치경찰제 도입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원샷(동시)에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사 기능이 강화되는 데 따라 경찰 비대화, 경찰국가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자치경찰제를 통해 수사를 하는 수사경찰과 안전, 교통 등을 책임지는 자치경찰로 나눠야 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경찰은 국가 소속, 자치경찰은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하면서 경찰 비대화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따. 법조계에서는 문 총장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전면적 자치경찰제 시행은 개헌이 필요할 수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바뀌는 경찰의 이해관계 조정 등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청와대는 자치경찰 시범 실시 등을 통해 단계적 전환 조치를 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은 그대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 총장이 반대하자 정부는 검찰을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과 경찰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장관 간의 합의문 형태 검·경 수사권 조정 방안을 2018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발표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법으로 만들었고, 야당이 반대하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워 20대 국회 내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못을 박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문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가자 퇴임을 두 달 여 앞둔 2019년 5월 다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문 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국회에서 신속처리 법안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형사사법체계의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점을 호소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후 사정을 봤을 때 청와대 입장에서는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작업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일을 할 사람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이 2019년 7월 말에 취임한 이후 얼마 있지 않아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윤 총장은 총장이 되기 전 청와대가 추진했던 검찰개혁에 가장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처럼 정권 입장에서 비교적으로 무난하게 보이는 사람도 검·경 수사권 조정 얘기가 나오면 강력하게 저항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무난하지만 일반적인 검사가 아닌 좀 더 파격적이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줄 때 언론은 "청와대, 정부, 집권 여당도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가장 주목했다. 문 대통령은 그에 앞서 윤 총장에게 "국민들은 검찰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셀프개혁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공수처 설치 또는 수사권 조정 등을 통해서 검찰의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말은 이 말이었을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다소 모호하지만 문재인 정부 추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윤 전 총장은 청문회 당시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국회에서 거의 성안이 다 된 법을 틀린 거라는 식으로 저항할 생각은 없다”며 “다만 전문가로 좋은 법이 나올 수 있도록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또 "검찰의 본질적 기능은 소추(기소)라고 생각한다"며 "수사지휘는 검·경의 커뮤니케이션인데 지휘 개념보다 상호협력관계로 갈 수 있는 문제 아니겠느냐. 직접수사는 국가 전체로 보기에 반부패 대응 역량이 강화·제고된다면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되 장기적으로는 안 해도 되지 않나 (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과 관련해서는 "종결권을 부여한다면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문제"라며 "중요 사건은 검·경이 같이 들여다보고 별 거 아닌 사건은 (경찰에서) 종결할 수도 있는 거고, 실질적으로 봤을 때 (검·경이) 대등관계인 미국이 (범죄 대응에) 더 뛰어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공수처에 대해서도 찬성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제 조건을 제시했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 방안에 큰 틀에서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을 임명한 것은 결국 실수로 드러났다. 윤 총장은 총장이 되자마자 자신의 파트너로 유력했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수사를 하면서 정권과 각을 세웠고, 퇴임할 때까지 사실상 야당 역할을 했다. 조국 수사가 한창일 때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이 언제가는 여권 인사를 수사해 우리한테 부담이 될 줄 알았다”며 “그렇지만 그 시작이 이렇게 빠르고, 조국이 그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여권 입장에서 봤을 때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훗날 윤 전 총장에 대해 ‘구밀복검’이라는 표현을 썼다. 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는 말이다. 조 전 장관은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없다는 취지로 윤 전 총장이 말했다는 기사가 나오자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 여당 인사들 입장에서는 윤 전 총장이 총장이 되는 과정도 구밀복검이었다고 평가할지 모르겠다.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특수통 검사들은 과거의 검사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문 대통령과 여권의 오판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검찰의 핵심을 장악하고 태도를 바꾸자 정권에게는 가장 골치 아픈 존재가 돼 버렸다. 이를 바로 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무리수로 볼 수 있는 조치들도 불가피했다. 이 과정에서 국론 분열 등 많은 기회비용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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