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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환 Sep 13. 2021

#4. 징계와 수사지휘권(2020년 2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은 수사지휘권 발동과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추진으로 절정에 달한다. 추 장관은 2020년 7월 윤 총장이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채널A 사건)에 대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하기로 한 데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다. 이 사건은 윤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윤 총장이 수사를 축소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전문수사자문단은 수사심의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지만, 총장의 자문기구 형태로 법률 전문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법조인들도 다수 포함된 수사심의위와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수사전문자문단의 명단은 비공개로 총장이 마음대로 위촉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즉 윤 총장은 수사전문자문단을 앞세워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한다는 의심이 나온 것이다. 추 장관은 심의 절차를 중단하고, 윤 총장과 대검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대한 지휘·감독을 못하도록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헌정 사상 두 번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독립성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 지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는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의 부담이 크다. 과거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많았을 때는 수사지휘권은 비공식적 형태로 많이 행사됐다. 수사지휘권이 공개적으로 행사된 첫 번째 사례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2005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 때 김종빈 검찰총장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이 때문에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카드는 윤 총장에게 사퇴를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윤 총장은 다소 굴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참는 길을 택했다.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고,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별도 수사팀 제안 등을 했지만 추 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자 수용의 길을 택한 것이다. 윤 총장은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중단하고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를 그대로 수용했다. 단 수사지휘권 행사에 반발해 사퇴의 길을 택하진 않았다.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도 한 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는 이뤄지지 않는다. 수사전문자문단 대신 소집된 수사심의위원회에서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중단 및 불기소가 다수 의견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추가 수사를 위해 한 검사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려다 독직 폭행 논란이 벌어진다. 정진웅 형사1부장이 휴대폰을 만지던 한동훈 검사장과 신체접촉을 일으킨 것이다. 정 부장은 한 검사장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주장했지만, 한 검사장은 비밀번호를 풀려 했을 뿐이라며 독직폭행이라고 맞섰다. 검사처럼 시민을 인신구속할 수 있는 사람이 권한을 이용해 폭력행위를 하면 독직폭행이 된다. 정 부장은 한 검사장의 고발에 따른 수사를 거쳐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다. 추 장관의 첫 번째 승부수는 실패로 끝났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고, 윤석열 총장도 사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불과 3개월 여 만에 다시 한 번 수사지휘권을 행사한다. 라임 사태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이다. 윤석열 총장 가족과 주변에 대한 수사에 대해서도 지휘권을 박탈했다. 윤 총장 가족과 주변 수사는 개별적으로 따지면 총 4건의 수사지휘였다. 윤 총장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수사 선상에 오른 회사로부터 협찬금을 받았다는 의혹, 윤 총장 부인이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연루됐다는 의혹, 윤 총장 장모가 요양병원을 불법 운영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부당하게 무혐의 처분했다는 의혹, 윤 총장 측근 윤대진 검사장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 등이다. 추 장관은 헌정 사상 한 번밖에 없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3개월 간 두 차례에 걸쳐 총 6건을 행사한다. 윤 총장은 이번에는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를 별 이의 없이 수용했다.

 추 장관의 마지막 승부수도 머지않아 나왔다. 두 번째 지휘권을 발동한 지 한 달 여만에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에서 배제한 것이다. 추 장관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6가지 징계 청구 및 직무배제 사유를 밝혔다. ▲사건 관계인인 언론사 사주와의 만남 ▲주요 사건 재판부 판사들에 대한 사찰 ▲검·언유착 사건 및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감찰 방해 ▲대검 감찰부장으로부터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 개시를 보고받고 외부로 유출 ▲국정감사장에서 퇴임 후 정치 참여를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해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대면 감찰 조사를 받을 당시 감찰 대상자로서 협조 의무 위반 및 감찰 방해 등이었다. 추 장관이 징계 청구를 하기에 앞서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검사들은 검찰총장실을 방문해 감찰 관련 조사를 시도하기도 했었다. 윤 총장은 이를 거부했고 조사가 잘 진행되지 않자 추 장관은 징계 청구라는 강수를 던졌다.     

 추미애 장관의 승부수는 실패로 끝난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이 자신을 직무배제하자 곧바로 법원에 직무배제 처분 취소와 집행 정지 신청을 낸다. 추 장관의 직무배제 조치가 있은 지 1주일 만에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집행정치 신청을 받아 들인다. 재판부는 직무배제 조치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를 2년 단임으로 정한 검찰청법 등 관련 법령의 취지를 몰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직무배제를 통해 사실상 검찰총장을 해임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한 조치라는 게 법원의 결론이었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와 징계 청구를 결정하자 검찰의 조직적 반발도 나왔다. 친정권 검사라고 했던 고기영 법무부 차관은 사의를 표명했고, 조남관 대검 차장도 추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직무배제 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밝혔다. 18개 전국 지방검찰청 단위로 평검사 회의가 잇따라 개최됐고, 윤 총장의 징계에 반대하는 성명이 나왔다. 한 언론은 평검사 98%가 윤 총장 직무배제가 위법하다는 성명에 동참했다고 보도했다. 추 장관의 징계 청구는 검사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조남관 차장은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검사들은 총장님께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쫓겨날 만큼 중대한 비위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검사들의 정서를 대변했다. 다만 검사들은 성명서 이상의 집단 행동은 하지 않았다. 참가자 수는 많았지만, 강도는 과거의 검란보다 강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성명서 내용도 징계 부당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추 장관의 사퇴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과거의 집단행동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201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추진했을 때 특수통 검사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행동은 한상대 총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당시는 참여자는 적었지만 강도는 더 셌다.     

 추미애 장관은 물러서지 않고 정면돌파를 택했다. 직무배제 집행 정지 조치와 검사들의 집단 반발에도 징계 절차를 밀어붙였다. 집행정지 직후 징계위를 강행하려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 공정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제동을 걸어 징계위는 1주일 이상 연기된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징계위는 당초 예상됐던 파면에 비해 낮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징계 수위가 낮아진 데는 법원의 직무배제 집행정지 결정과 검찰의 반발 외에 윤 총장의 징계 사유가 파면에 이를 만큼 중대하지 않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징계 청구 사유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판사들에 대한 사찰이었는데 사찰로 보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공개 인물정보 등을 통해 판사들의 세평을 수집한 것으로 사찰이 아닌 기관의 정보 수집 행위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도 사찰 행위를 중요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 징계위는 17시간 30분 간의 회의를 거쳐 정직 2개월로 최종 수위를 정했다. 추 장관이 든 징계 사유 6개 중 4개를 인정했다. 재판부 사찰 의혹 문건 작성 및 배포, 검·언유착 사건(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및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이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원들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일부 위원들에 대해 기피 신청을 냈는데 징계위는 이유 없다고 보고 징계를 강행했다. 징계위원은 원래 7명이지만, 이날 징계 의결에 참석한 사람은 4명이었다. 본래 위원인 추미애 장관이 청구자로 빠졌고,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도 스스로 징계위에서 빠졌다. 심 국장은 징계 청구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징계위 외부위원이었던 최태형 변호사는 법무부의 연락을 받지 않고 징계위에 불참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언론은 징계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형식이나 내용 상 모두 징계 청구를 처음 할 때보다는 김이 많이 빠진 모양새였다. 징계 결과가 나온 뒤에도 여러 논란은 계속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징계위가 결정한 대로 징계 안을 재가했다.

 윤석열 총장은 다시 징계 처분 취소 소송 및 집행정지 신청으로 맞섰다. 법원이 이번에는 추미애 장관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결과는 다시 윤 총장의 승리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홍순욱)는 징계위가 인정한 네 가지 징계 사유 중 두 가지의 근거가 없다며 징계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징계위는 참석한 4명의 위원 중 기피 대상자를 퇴장시킨 후 나머지 3명의 투표로 그를 징계위에서 배제할지 결정했는데 이는 재적 위원 중 과반수인 4명 이상의 위원이 출석해야 한다는 검사징계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총장의 법적 지위, 임기 등을 고려하면 2개월 동안 총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라며 “당사자가 참고 견디기 현저히 곤란한 유형‧무형의 손해에 해당한다”며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징계 집행정지 처분으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법원의 결정이 나자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국민들게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추미애 장관은 사퇴했다. 청와대는 윤 총장의 복귀 결정이 있은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추 장관 교체 인사를 발표한다. 추 장관은 이임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상당한 비위를 확인한 장관으로서 제가 먼저 사의를 밝히면 윤 총장도 그런 정도의 엄중함과 책임감을 가져주리라 기대한 것”이라면 본인이 사퇴하면 윤 총장도 스스로 물러나줄 것을 기대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추 장관의 윤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 징계 청구 등은 모두 윤 총장의 사퇴를 겨냥했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추 장관의 판단은 오판으로 드러났다. 추 장관의 일 처리는 비판의 소지가 크다. 무리하게 윤 총장을 사퇴시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윤 총장 징계 사유는 결정적인 게 없었다. 검사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왔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됐다. 이른바 ‘추-윤 갈등’ 언론에 매일 중계방송되면서 이슈 블랙홀 역할을 했다. 궁극적으로 봤을 때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권 내에서도 적지 않은 반대가 있었지만, 윤 총장을 임명한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자신이 임명한 사람을 자르려는 법무부 장관의 조치를 용인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입장에서 정권의 골칫덩이가 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별로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윤 총장을 해임하는 것이 쓸 수 있는 방법이지만, 법 상 임기가 정해져 있는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해임권이 없다. 이럴 경우 과거 정권들이 주로 쓴 방법은 임기제 공무원이 스스로 사표를 쓰게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가정보원은 직원들을 동원해 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파고 다녔다. 사실 이러한 방식도 매우 이례적이다. 보통 은밀하게 사퇴 압박을 가하는 것이 과거 정권의 방식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야말로 정공법이 나왔다.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제기를 하고, 징계를 시도했다. 추 장관의 정공법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는 비판 일색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징계 사유를 찾지도 못한 채 요란한 절차를 거쳐 원하는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살펴 볼 필요도 있다. 레임덕에 빠지지도 않은 정권이 검찰총장 한 명을 못 짜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임기제 공무원의 해임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성숙했다고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준다. 임기가 보장되고 역할 상 독립성이 요구되는 국가 조직에서 마음먹고 정치적 결정을 할 경우는 어떻게 제어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견제하지 못하는 것도 제도의 맹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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