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환 Sep 13. 2021

#5. 정치검찰의 종식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탄생(2021년 1월)

 조국 사태로 문재인 정부는 큰 타격을 받았다. 정권의 도덕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도심에서 여러 형태의 시위도 일어났다. 2019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국정농단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촛불시위 인원과 비슷한 인원이 광화문광장에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되고, 이듬해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참패가 뻔하다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여론이 한 쪽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반작용이 있었다. 검찰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주말마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도 대규모 인파가 모여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서로 많은 인원이 모였다며 다투는 형국이 수주일 간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는 여당의 검찰개혁 동력이 됐다. 여당에서 검찰을 이대로 두면 안 되고,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 이전에는 검찰개혁에 별로 관심이 없던 의원들과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는 뜻이 모아진 것이다. 야당의 반대가 있었지만, 수사는 수사대로 하고 제도개혁은 제도개혁대로 한다는 태도로 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조국 사태에도 여론이 완전히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40% 안팎으로 버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야당 지지자들의 국회 난입, 야당의 단식 및 농성 등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여당은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을 통과시켰다. 검찰이 정상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면 이 법안의 통과는 훨씬 늦춰졌을 가능성이 컸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깨는 기관의 등장으로 인한 조정 문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 비대화 문제 등 여러 가지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여권과 검찰의 대화 채널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고 법안은 민주당이 만든 대로 큰 수정 없이 통과됐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검찰개혁 작업이 2020년 초 비로소 제도화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개혁을 화두로 삼은 첫 정부라 할 수 있었지만, 검찰의 여러 저항으로 개혁은 무산됐다. 보수 정부 시절 대검 중앙수사부 페지 등 일정 성과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검찰 개혁은 아니었다.     

 공수처 설치와 검찰의 수사권을 6대 범죄로 제한하는 수사권 조정 법안 통과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한국 현대사를 봤을 때 검찰은 노태우 정부 이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됐다. 각종 공안 사건을 조작하고 고문을 자행했던 정보기관과 경찰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6공화국 이전의 검찰 수사권은 큰 의미가 없었다. 민주화 이후 검찰의 역할은 달라진다.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네 명의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들이 감옥행을 피하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보기관과 경찰이 가졌던 권력의 공백을 검찰이 매웠다. 검사 출신인 박철언 전 의원이 6공화국 실세였던 점도 검찰이 새로운 권력으로 탄생하는 데 영향을 줬다. 권한을 가지게 되면 또 폐해도 생기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의 문제점을 직시한 첫 번째 정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하자 검사와의 대화를 하면서 맞장 토론을 했고, 검찰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했던 법무부 장관에 비 검사 출신인 강금실, 천정배 등을 기용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 작업은 좌절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가 검찰개혁이 좌초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었다. 다른 정부들과 달리 검찰은 노무현 정부와는 초반부터 각을 세웠다. 검찰은 보통 정권 초에는 실세들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이 때는 달랐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임명, 검사와의 대화 등으로 정권과 검찰은 갈등을 빚었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 1년 차인 2003년에 대선자금 수사를 한다. 수사 결과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차떼기 수법 드러났고, 여야 모두 기업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은 800억 원이 넘는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한 것으로 조사됐고,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새천년민주당은 100억 여 원 정도의 불법 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사가 진행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유명한 10분의 1 발언을 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이 받은 불법정치 자금의 10분의 1이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비교도 안 되는 정치자금을 모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발언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만다. 검찰 수사 결과 불법 정치자금 규모가 10분의 1이 넘었고, 안희정과 최도술 등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 구속된다. 불법으로 받은 돈의 규모는 한나라당이 훨씬 컸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여권이 받은 타격은 야당 못지 않았다. 여론은 권력을 쥔 쪽에 보통 더 엄격하다. 오히려 대선자금 수사를 한 대검 중앙수사부는 정의로운 집단이 됐고, 중수부장 안대희 검사는 언론이 국민 검사 호칭을 붙여줬다. 노무현 정부의 전반적인 인기 하락과 함께 검찰개혁도 흐지부지됐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30년 이상 권한을 키워왔던 검찰에 사실상 처음으로 제동을 건 개혁 조치다. 검찰은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잃었고, 사법부 고위 공무원과 검사 등에 대한 기소권도 공수처에 내줬다. 현직 고위 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측근에 대한 수사 권한도 공수처가 갖게 됨으로써 검찰은 수사권을 상당 부분 잃게 됐다. 향후 검찰은 기소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공수처의 탄생은 검찰의 모습도 완전히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대부분 검찰이 직접 수사했다. 직접 수사하고 기소도 하고, 어떤 사람은 봐줄 수 있는 권한도 모두 검찰이 가졌다. 검찰이 어떻게 수사를 하고 있는지 외부에서 알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다. 피의자들이 변호인을 내세워 방어권을 행사하더라도 여론 재판이 먼저 끝나버리면 방어권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수사는 오로지 검찰만이 할 수 있었다. 경찰은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일단 검찰에 영장을 신청해야 한다. 압수수색 영장이든, 구속영장이든 검찰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검찰이 경찰의 신청을 반려해 버리면 수사는 막힌다. 수사 도중에도 검찰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고, 수사가 완료된 후에는 송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면 검찰이 다시 수사를 할 수 있다. 경찰은 독자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수사하려면 많은 난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은 다르다. 정치권력의 하명이든, 자신들이 세운 목표든 그것을 향해 아무 간섭을 받지 않고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구조다.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가기 전까지는 검찰이 마음먹으면 그대로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범죄 자백을 받기 위해 강압 수사를 하고, 자백의 대가로 죄를 깎아주는 수사 관행이 판친다는 비판이 있었다.

 공수처가 검사들을 수사대상으로 삼게 된 것도 그동안 누려왔던 검사들의 권한을 제약하게 될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사들도 마음대로 수사하다가는 직권남용, 피의사실 공표 등의 피의자가 될 수 있다. 검사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수사기관끼리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이 됐다.

 수사기관의 권한이 쪼개지고 서로 견제가 됨으로써 과거와 같은 수사기관의 정치 행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이것이 수사기관의 개혁의 가장 큰 의의라고 봐야 한다. 권력이 수사기관을 이용하려는 행위나 수사기관 자체 논리에 따른 정치적 행위는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대통령 측근이나 친·인척, 현직 고위 공무원 수사는 공수처가 담당하게 됐다. 사법부 고위직과 검사 등에 기소권도 공수처가 가지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를 만든 경찰이 과거의 검찰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힘들다. 공수처와 경찰의 수사 행위는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건 기소권을 검찰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송치 후에 검찰이 다시 한 번 사건을 훑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는 영장을 받으려면 여전히 검찰을 거쳐야 한다.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가 안정된다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해 수사기관과 소추기관의 상호 견제로 권력기관 개혁을 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당장 중대범죄수사청을 또 신설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시기상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가 정착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수사기관을 어떻게 설계할지는 앞으로 계속 남아 있는 과제다. 검찰이 공수처 등을 흔들려는 의도도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총장직을 건 명분이 됐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수사기관과 소추기관 분리를 기초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에서 공백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예외적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반면 한국은 검찰 수사권을 기본으로 두고 있었던 나라다. 그로 인한 폐해는 수십 년 이상 누적돼 왔다. 변화를 시도해야 될 시점은 분명히 맞다. 어떻게 새로운 제도를 연착륙시킬 지는 운영하는 사람들 몫에 달린 것이다.     

 물론 신생 조직인 공수처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새로운 제도는 안착될지, 혼란을 야기할지 판가름날 것이다. 설치법 통과 이후에도 처장 부임까지 1년 이상 혼란이 계속됐고, 출범할 때부터 여당의 밀어붙이기 인상이 강했던 한계가 분명하다. 수사의 전문성도 떨어지고 검찰의 견제도 상당하다. 역시 국가수사본부 체제로 출범한 경찰 수사권도 어떻게 행사되느냐에 따라 개혁과 혼란 중 하나로 평가될 것이다. 양 쪽 기관 다 초반에 불안한 모습을 감출 수 없겠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전 22화 #4. 징계와 수사지휘권(2020년 2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