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공황장애를 선물해준 예전 직장에서도 얻은 것은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것은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난 것.
직장 동료와 회사 밖에서도 인연이 이어가기가 쉽지는 않은데, 나는 운좋게 진짜 친구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이십대 중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정도로,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
그들은 나를 얼마나 편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나라에서 자라온 교포 출신이거나 아예 외국인인 경우가 많아 나에겐 다행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젊음을 즐기고,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이 사회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삶의 단계라면,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원하지 않고, 한 직장이나 나라에 묶여있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나는 딱 내 친구들의 인생의 단계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친해진 친구들은 살아온 환경 만큼이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알게 모르게 참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너무나 순수하고 상냥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 T.
우울한 날도 T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어느새 긍정적이 되고 기운이 솟는다. 남의 험담을 하기 보다는 칭찬을 하고, 작은 것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즐기는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다.
말도 잘 못하고 별로 재미있지 않은 나도, T와 대화를 할 때면 내가 참 유쾌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당신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뻤고, 앞으로도 자주 보자고 먼저 말해주는 사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어디서든 친구를 쉽게 사귀는 엄청난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한사람 한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친구 CK.
사교성이 좋고 친구가 많은 경우 그 관계의 깊이는 얕은 것을 종종 보았는데, CK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섬세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녀는, 본인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 수 있는지를 캐치하고, 이를 설명해서 오해를 만들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녀의 대화의 기술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서, 감정의 파도에 이유도 모르고 휩쓸리는 일도 적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참 못하는, 도움이 필요할 때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도 있는 사람.
아니, 나보다 10년은 적게 살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삶의 요령을 습득했는지. 참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친구다.
그리고 매년 본인의 생일에 생일 선물 대신 기부를 부탁하는 친구 Y.
친구들의 생일은 절대 잊지 않고 매년 선물을 보내주지만, 본인은 정작 아무것도 받지 않는 사람.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 친구에겐 가끔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이렇게 친구들의 좋은 점을 배우려고 노력하다보면 나도 조금씩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중한 인연들에 참 감사하고, 이 인연들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잊지 말자고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