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공부한다고 하면 청소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왠지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내 주변이 좀 말끔해야 집중하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지저분하니 공부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등.
이는 습관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위 즉 습관은 어떠한 특정 신호에 의해서 촉발된다. 즉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방아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오감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을 받고 그것을 신호로 특정 행동을 하게(또는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신호'에 연결된 행동이 여러 개 일 때이다. 만약 '책상'에 앉았을 때라는 신호에 따르는 행동이 '영화보기' 음악 감상하기' '과자 먹기' '게임하기' '공부하기' 등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력'을 소모해서 해야 할 일을 선택해야 한다. 게다가 의지력은 한정적이다.
영화보기를 유발하는 것은 컴퓨터이다. '과자 먹기'를 유발하는 것은 영화일 수 있다. '게임하기는' 컴퓨터 메인 화면일 수도 있다. 공부하기는 책상이라는 신호에서 유발되는 행동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책상을 치우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다른 행동을 유발하는 신호를 제거하는 것이다.
어떤 신호들이 보이는가?
같은 맥락으로 책상이 지저분해도 일 혹은 공부의 능률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있다. 책상에서의 신호가 일관되게 하나인 경우이다. 일과 관련된 물품이 일과되게 한 방향의 업무를 가리킨다면(예를 들어 책 읽기라든가) 오히려 책을 읽는 행위는 그 신호에 의해서 자극받을 수 있다.
우리는 책상을 다양한 행동을 하는 장소로 이용하기 때문에 공부가 집에서 잘 되지 않는다. 집에서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하는 장소의 영역이 명확히 규정될 필요가 있고 그 공간에서의 행동은 하려는 목적에 한정될 필요가 있다.
이게 안 되니 우리는 공부할 공간을 찾아 도서관이나, 카페 등을 찾는 것이다. 도서관에서의 신호는 "공부'다. 카페도 비슷한 맥락이다. 환경을 바꿔, 행동을 유발하는 환경적인 신호를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또한 그래서 청소를 나눠서 미리미리 하는 습관 혹은 청소할 필요를 줄이는(쓰레기 버리기나 정리정돈을 바로 하는 행위 등) 습관을 만들게 되면, 평소의 일의 능률을 높여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