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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과 행복감은 같은 카테고리의 감정이다

계단으로 연결된 위 아래층이다.

축 처진 기분이에요.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서 소모성 컨텐츠를 읽고 웹툰을 보며 유튜브의 영상을 누르고 누르다가 계속 같은 영상이 떠서 지루해하다가 배달음식으로 위가 터질 것처럼 가득 먹다가 새벽 3~4시에 저도 모르는 순간에 잠들었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 일어나서 같은 패턴을 반복했고요.


우울감이나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순간이 있다. 마치 손발이 묶인 채 바다에 빠진 것처럼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 무엇을 시도하기도 어렵고 현 상태를 인지하기도 싫어서, 계속 도피성으로 폭식을 하고, 영상에 몰입하다가 지쳐서 잠드는 하루. 이때 도대체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일까 감도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억지로 타인과의 약속 때문에 혹은 사회적인 이유로 '출근'을 하고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내가 도대체 어제는 집에서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밝은 나를 발견한다. 뿌듯하기도 하고. 그날 집에서는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아니면 조금 더 나은 상태로 잠이 들기도 한다.


우울함과 행복감은 한 빌딩 안의 위아래 층과 같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있다면 둘이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다른 두 객체가 한 몸을 뒤집어쓰고 활동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건 흔히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전혀 특별한 나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울이나 행복을 특별한 감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감정은 마치 한 빌딩의 위아래 층과 같은 감정이다. 우리가 우울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저 몇 번의 우울한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을 뿐이고 행복은 그저 몇 계단 위로 가는 발판을 밟았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하루가 우울해지고..


오늘 먹은 음식이 살짝 아쉬웠다. 하필이면 살짝 날씨가 쌀쌀하다. 옷을 아쉽게도 약간 춥게 입었는데, 비가 정말 아주 조금 와서 내 옷을 몇 방울 적셨다. 오늘따라 주차할 곳의 자리가 집과 먼 곳만 비어있다. 집에 올 때 사 오기로 한 찬 꺼리를 모르고 까먹고 못 사 왔다.


하나, 하나만 보면 하루 중 흔히 있을만한 일들이다. 그런데 저런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우리는 우울이라는 감정의 하강 나선을 타고 아래 층으로 내려가게 된다. 특별하게 대단한 불행이 아니다. 마치 박자를 맞추는 리듬게임처럼 소소한 불행이란 박자를 몇 번 타게 되면 내가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우울한 감정으로 집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마디 뱉는다. "사는 게 왜 이리 우울하냐." 이를 하강 나선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하루가 행복해지고..


오늘 일어났는데 평소에는 인식 못했던 창 밖의 태양이 보인다. 오늘 출근하는데 어제 챙겨둔 핫팩이 은은하게 주머니 손을 데운다. 손바닥이 따뜻하다. 회사에 동료들과 정한 점심 메뉴가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메밀소바 가게다. 오늘 우연히 일주일 동안의 간단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헬스장에서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다시 샤워실 문을 열었다.


이 또한 흔하게 평소에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소소하게 일어나는 하루의 마무리는 조금 더 미소를 지을 가능성이 있으며, 기분도 좋게 하루가 마무리될 수 있다. 이를 상승 나선이라고 한다.


문제는 드라마를 원한다는 것.


이런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뭔가 이 인생에서 드라마틱한 큰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뭔가 한 방으로 전세를 크게 이겨보고 싶달까. 그런 변화는 아주 극악의 확률성 게임에서나 얻을 수 있는 큰 행복인 데다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뇌는 강한 보상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행복해하는 게 맞다. 문제는 이런 행복은 한 번 얻고 난 다음에 급속도로 뇌의 보상의 크기를 줄여 버린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보상을 얻어야 한다. 그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일들이다. 그래 놓고 나에게 그 드라마 같은 삶이 없음을 한탄한다.


현실의 행복은 드라마보단 다큐에 가깝다.


대부분 우리가 통제 가능한 성취는 성장이 더디고 노력이 상당히 들어간다. 그런 매일의 노력이 쌓여서 그 결과로 나오게 되는 성취는 대신 단단하며 누군가에 의해서 쉽사리 무너지지도 않는다. 이런 하루하루의 성취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기는 것은 행복의 계단을 밟아나가는 것과 같다.


또한 행복이란 성취보단 '발견'에 가깝다. 인지의 영역에서 같은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능력이 행복감의 본질에 가깝다. 그리고 내가 상승 나선을 타고 올라가느냐 하강 나선을 타고 내려가느냐 정도가 오늘 나의 감정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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