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점수는 당신의 존재의 증명과는 상관이 없다.
수능이다. 이제 많은 수험생들의 희비가 갈리고 갈 대학과 가지 못할 대학이 결정될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전세계적으로도 높은 대한민국에서 '수능'은 인생에 가장 커다랗게 겪는 고비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만큼 수능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끼친다.
전체 50만명이 넘는 대학생 중 소위 SKY에 입학하는 수는 전체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작년 1만 1천 8백 명). 수험생 모두에게, 그런데 수능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오랫동안 그 사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이해하면,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무슨 말이냐?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는 캐나다의 국민 스포츠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희한한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뛰어난 아이스하키 선수 중 1~3월에 태어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보통 유소년 아이스하키 선수 리그가 1월 1일을 기준으로 선수를 선발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개월마다 성장의 폭이 다르다.
만약 1월에 태어난 아이와 11월에 태어난 아이를 테스트한다면, 같은 나이더라도 1월에 태어난 선수는 늦게 태어난 선수보다 10개월 정도 더 발육할 만한 시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좀더 코치의 눈에 띌 상황이고, 좀더 좋은 코칭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체 아이의 1/4은 태어나자마자 좀더 뛰어난 선수가 될 환경에 우연이 태어나게 된다.
여기서 강조점은, 결국, 아이들은 '재능'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인 혹은 시간적인 훈련에 의해서 더 뛰어난 선수가 된다는 것이다. 태어난 날은 결코 그들이 재능적으로 나머지 9개월 동안 태어난 아이들보다 뛰어남을 증명하지 못한다. 다만 좀더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가능성이 생기고, 스스로 좀더 재능있다는 '편견'이 자신감으로 잡힌다는 이야기다.
이를 수능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는 수능을 토대로 인생의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고 착각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수능을 '재능'의 증명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똑똑함 혹은 성공할 가능성에 대한 증명이라는 것이다. 재능을 증명하지 못한 이들은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이 때 많은 자존감이 깍이게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결단코 말하건데 수능은 그 정도로의 재능 변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수능이 변별하는 것은, 1.뛰어난 공부 전략 2.노력 3. 공부를 위한 환경 정도를 의미한다. 돈이 많고 머리가 좋고, 환경이 나은 사람들이 더 유리할 수 있을지언정, 이들이 재능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펜실베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 엔젤라 더그워스는 책 '그릿(GRIT)'에서 재미있는 공식을 발표한다.
즉 재능은 특정 분야에서의 '성취'에 분명 영향을 미치는 큰 요소이지만, 성취에 이르기 위해서는 노력이 제곱 즉 두번 곱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력(책에서는 'GRIT')을 어떻게 키우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즉 노력은 성장하는 요소이고 후천적으로 훈련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수능의 결과는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전략을 계속 좋게 하려는 노력을 했는가. 그 좋은 전략을 꾸준히 지속하려고 노력했는가. 환경을 좀더 좋게 개선하려고 힘썼는가. 정도에 대한 판단을 하면 그뿐이다. 수능은 인생의 그리 큰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큰 부분을 결정한다'고 믿어버리면 그 믿는대로 된다. 마치 아이스하키 선수들 처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생했다. 당신의 노력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