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란 조언이 정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
노력하란 말만큼 의미 없고 효과 없는 말이 있을까? 조언한답시고 노력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오히려 낭패를 본 경험이 없는가? 그만큼 사람들은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단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 사회 자체가 노력을 좋아하는 사회가 아니다. 먼저 질문부터 하자. 진심으로 당신은 노력이 당신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 사회는 노력을 통해 얻는 성과보다
노력 없이 저절로 얻게 된 성과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라고 이야기했다. 겉으로 노력을 중시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속으로는 '재능'을 더 강조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조용히 관찰해보자. 사람들은 타고난 것을 더 좋아하는가 노력해서 성취한 것을 더 좋아하는가.
노력보다 타고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노력은 재능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성장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노력'에 힘을 쏟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력이라는 단어는 '위협'과 동일한 언어로 들리게 된다.
이는 토끼와 거북이의 예로 이해할 수 있는데, 빠르게 달리는 재능을 가진 토끼와 그런 재능이 없는 거북이가 등장인물이다. 그런데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토끼를 깨우지 않고 방심하게끔 하는 수밖에 없다. 이 우화에서의 교훈은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 가 아니다. 오히려 ‘재능이 있어도 방심하지마.”에 가깝다.
만약 거북이의 달리기 실력이 이전보다 뛰어나게 되어서 토끼보다 빠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면 어땠을까? '재능 없는 이는 재능 있는 이를 편법으로밖에 이길 수 없다.'는 방식으로 양분화된 이야기를 우리는 꾸준히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다. 우리가 거북이에 쉽게 감정이입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노력이라는 것은 누구나 개발 가능한 재능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증명을 하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증명하는 재능이다. 노력이라는 게 더 특별한 재능인 이유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다시피, 노력은 사람들의 숨겨진 성취능력을 개화시키고 완성시킨다. '의식적인 연습'이라는 기법을 사용하면 노력으로 개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재능은 날개를 달게 된다. 끊임없이 어제보다 나은 방식으로 재능을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스스로가 내부에서 마음을 먹은 상황이 아니라면 노력하란 말은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잔소리가 된다. 약이 되는 조언이 되려면, 먼저 상대가 노력을 중시하는 사람인지 재능을 중시하는 사람인지 이해해야 한다. 재능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대부분이 그렇다) 그 사람이 노력을 중시하게끔 하는 생각의 전환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분명 시간이 걸리며, 기다려줘야 한다.
그리고 먼저 조언자 스스로가 재능보다 노력을 더 중시 여기는 사람인지부터 자아 성찰해보자. 나는 입으로만 노력을 부르짖는 재능 주의자는 아닌가? 상대를 설득하는 더 좋은 방식을 알려주자면, 상대가 당신을 보면서 "아 노력하면 바뀔 수 있구나."를 알만한 성취를 스스로 만들어내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쉽게 노력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꼰대가 되겠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꼭 모든 사람이 성취하고 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존재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이
글의 취지조차도 꼭 변해야 한다 가 주 목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