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음식도 마찬가지. 먹는 자유가 커질 수록 빼야하는 책임도 커진다.
집 가까운 게 최고
대학교 신입생이 된 지 일주일 만에 후회했다.
대학교를 정할 때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거리
지하철로 다니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서울 북부에서 인천 소래포구 근처까지 매일 통학은 녹록지 않았다. 환승만 두 번을 해야 하고, 집 문 밖에서 학교 강의실까지 정확하게 2시간 30분이 걸렸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면 출근 지옥철을 뚫어야 했고, 6교시에 끝나는 날엔 퇴근 지옥철을 뚫어야 했다.
지하철을 오래 타는 건 먹는 것에도 영향을 줬다.
새벽에 나와야 하니, 아침을 못 먹고 나오는 날이 많았다. 서울역에 도착할 즈음이 되면 배가 고팠는데, 지하철 환승 통로에 따끈따끈한 떡을 파는 할머니를 지나치치 못했다. 떡 한 팩을 사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우걱우걱 먹으면 그게 아침식사였던 것이다.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우동이나 돈까스를 먹었다. 저녁은 학교 근처에서 이른 저녁 겸 분식을 먹거나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별로 안 먹는 것 같아도 지방과 탄수화물은 끼니마다 챙겨 먹으니, 살은 다시 고3 때처럼 오르기 시작했다.
피곤한 것도 싫고, 살이 찌는 것도 슬슬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쪄봤자 찌겠어?'라고 생각을 했는데, 두 달 동안 열심히 뺀 살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지하철 통학이 원인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자취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들으시기엔대학생 딸의 도전이라기 보단 걱정이 앞서셨을 것이다.
"혼자 밥은 해 먹을 수 있겠냐."
"살림이 쪼개지는 게 아니라, 둘로 늘어나는 거다. 자취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얼마 다녀보지도 않고서 엄살 부리지 마라."
"여자 혼자서 자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 줄 아느냐"
다 옳은 말씀이었지만, 그래도 자취를 꼭 하고 싶었다.
자취생으로 살기
기어코 2학기에 자취 생활을 시작하는 데 성공했다. 학교 근처에 300만 원 보증금에 34만 원짜리 원룸을 계약한 것이다. 혼자 사는 게 위험하다고 하셔서, 6살 많은 동기 언니와 함께 살기로 했다. 밥은 할 줄 모르니 반찬은 집에서 가져가서 먹으면 될 것 같았고, 한 학기만 일단 살아보고 2학년 때는 자취할 지 말 지 다시 생각해보자는 게 조건이었다.
처음엔 굉장히 모범적인 자취 생활을 했다. 나도, 룸메이트 언니도 집반찬을 많이 가져왔다. 언니가 전날 저녁에 해 둔 솥밥이랑 같이 아침을 먹었고, 간단한 요리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굉장히 짧았는데, 금방 질렸기 때문이다. 사실 자취생 반찬이라는 게 비슷했다. 김, 계란, 진미채, 깻잎, 김치, 장조림 같은 거라 늘 먹는 음식이지만 특별한 음식이 없으니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냉장고를 여는 대신 식당 전단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 도미노 피자 40% 할인되는데."
할인카드가 없었으면 피자를 시켜먹지 않았겠지만, 맛있는 피자를 싸게 먹을 수 있으니 당연히 시킬 수밖에 없었다. 쿠폰을 모으는 재미에 계속 시켜먹기 시작했다.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느는 것처럼, 피자도 먹으면 양이 늘어난다는 걸 이때 알았다. 나는 피자 두 조각에 콜라 한 잔이면 배가 불렀는데, 언니는 계속 나보고 더 먹으라고 부추겼다. 같이 산 지 세 달만에 피자 한 판을 둘이 해치우고도 어딘가 헛헛한 느낌을 가지는 수준에 도달했다.
피자 말고도, 분식, 치킨, 탕수육 등 야식을 이틀에 한 번은 저녁으로 시켜먹었고, 문 앞에는 배달음식 포장박스만 쌓여갔다.
빵집 아르바이트
지하철 통학을 안 해서 줄어든 시간과 남는 체력으로 공부를 할 거라는 건 시험기간에만 적용되는 말이었다.
시간이 남아도 공부를 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 지루해보였는지, 룸메이트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건 어떻냐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카페 알바나, 과외는 한 개씩 하고 있었고 알바비 모은 돈으로 여행을 가거나 갖고 싶은 걸 가는 게 멋있어 보이긴 했다. 우연히 학교 근처에 제과점에 아르바이트생 공고 전단을 룸메 언니가 보게 되었고, 다음 날 집에 가는 길에 면접 약속도 없이 무작정 제과점에 들어갔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세 시간만 판매하는 간단한 일이라 복잡한 면접이 필요없었다. 시간 맞고, 집 가까우면 되는 것이었다. 나도 그 시간이면 방에서 핸드폰이나 깨작거리는 시간이었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
한 이틀동안 빵이름과 가격을 외우고 나자, 배울 것도 없고 할 일도 없는 꿀알바였다. 내가 제빵을 하는 것도 아니고, 늦은 저녁시간이라 손님들도 거의 없었다. 가끔 손님들이 오면 제대로 돈만 받으면 되었다. 게다가 사장님께서도 손님이 없을 땐 책을 가져와서 공부를 하거나 개인 시간을 보내도 좋다고 하셨다. 집에 갈 때는 한 봉지 가득 먹고 싶은 빵을 담아 주시는 건 덤이었다.
보너스 처럼 매일 챙겨주시는 빵 덕분에 일하러 가는 게 더 즐거웠다. 빵을 먹고 싶을 때 마다 냉장고에 가득 차있는 빵을 골라서 먹는 게 행복했다. 아침으로도 먹고, 간식으로 출출해서도 먹고, 알바끝나고 자기 전에도 먹었다. 많이 주시는 데도 빵이 남아서 버린적은 한 번도 없다. 그 많은 빵들이 다 살로 바뀌는 줄도 모르고 계속 나는 그것들을 입 속으로 넣었다.
소보로 빵, 슈크림 빵, 소세지 빵 등 익숙한 빵들을 파는 빵집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 빵들을 나는 다 먹어보았다.
종강하고, 자취집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온 날,
아버지는 내 모습에 다소 충격을 받으셨나보다. "걸어오는 게 아니라, 공이 굴러오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