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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Jan 05. 2020

ep6. 살 안찌는 술은 없다

소주와 자바칩 프라푸치노의 칼로리는 같다


그땐 알지 못했다

소주 칼로리가 그렇게 높을 줄은



1학기 말에 전과를 하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치위생학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고작 몇 개월 공부하고 적성 타령이겠냐마는, 그땐 그랬다. 치위생사가 되어 스케일링을 하면 환자 잇몸을 다 갈기갈기 헤집어 놓을 것만 같아 무서웠기 때문이다. 

생명과학과로 전과 신청을 했고, 2학년 때부터는 생명과학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도 시작했다.  





파티문


생명과학과는 조금 특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1, 2학년은 강화 캠퍼스에서, 3, 4학년은 본교 캠퍼스에서 공부를 하는 분리된 구조였다. 각 학년에 40명 남짓이었으니, 강화 캠퍼스에는 대략 80명 정도의 학생들의 공간이었다. 

소수의 인원이 생활하는 것도 특이했지만, 강화도라는 곳이 도시와 단절된 지역이었다. 기숙사 창문에서 보면 서해 바다가 바로 보이는 그런 외딴곳이었고, 편의점도 없고 1km 떨어진 곳에 슈퍼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름 그 안에서도 재미있게 지내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바로 우리끼리 즐기는 파티였다. 
개강 파티부터, 캠퍼스 커플을 축하하는 cc파티, 생일파티를, 누가 헤어지기라도 하면 이별파티, 종강파티, 동아리 파티 등 파티가 종종 있었다. 술과 안주가 있었음은 당연지사. 근처에 편의점은 없었지만, 배달은 가능했기에 안주는 늘 풍성했다.  


신입생 오티 때부터 나에게 술이란 좋은 것이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물론, 어색한 사이를 친밀하게 이어주는 마법과도 같았다. 전과생이라 초반 적응이 어려웠는데,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파티였다. 또 특별한 주사도 없고, 필름이 끊긴 적도 거의 없었다 (있긴 있었다).  다음 날에도 숙취 없이 일어나 강의도 잘 들었기에, 주량에도 나름 자신 있었다. 


살?
찌긴 했지만, 기숙사에서 나갈 일이 없으니 차려입을 일도 없었다. 늘 트레이닝복에 후드티 차림으로 지냈다. 트레이닝복은 내가 저장하는 지방들을 다 가려주었기에 살이 얼마큼 찌는지는 잘 몰랐다.



언니가 화장실에 가는 이유


과제에 치여 더 이상 공부가 하기 싫은 어느 날 밤이었다. 우리는 조촐하게 치킨을 시켜 먹기로 했다. 
파티가 없을 때는, 룸메이트들과 조촐하게 야식을 먹으며 술을 먹기도 했는데 룸메이트 언니의 술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 방은 파티를 자주 하는 방이 되었다.   

그날도 우리가 야식을 먹는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은 다른 방 사람들이 아껴두었던 소주와 과자를 들고 우리 방으로 모였고, 이내 꽤 큰 파티가 되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였다.  

룸메이트 언니가 "나 잠깐 화장실 좀" 이라면서 복도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술 먹는 게 힘들어서 잠시 바람 쐬고 오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언니의 주량의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언니는 술이 셌다.  
그런 언니가 여러 번 화장실을 간다기에, 걱정이 되어 따라갔다. 

언니는 날 보더니 본인은 취하지 않았다며, 토하러 가는 거라고 했다. 

"술을 토해요???????"  
"응. 그래야 살도 안 찌고, 술도 더 먹을 수 있으니까"


언니는 토하고 다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게임을 하고 또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었다. 
그렇게 술을 먹는 게 익숙한 듯했다.




술 먹고 토하는 건 괜찮을까?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기로 한 건, 소주의 칼로리를 알게 된 이후였다.

 소주 한 병 칼로리가 350kcal 정도 되는데, 언니는 소주에 맥주까지 먹고 안주도 너무 잘 먹는데도 그냥 평범한 몸매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는 파티를 좋아할수록 계속 살이 찌고 있었다. 오버핏 후드티가 점점 딱 맞아가고 있는 걸로 알 수 있었다.

'술 먹고도 살이 안 찌는 방법은 토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난 뒤, 나도 공용 화장실에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게워내는 게 어렵더니, 한 두 번 해보니 나름 요령이 생기는 듯했다. 점점 횟수가 늘었다. 진짜 살도 안 찌는 것 같았다. 살짝 어지러웠던 것도 사라져서 다시 처음부터 술을 먹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부작용들이 찾아왔다. 

목이 쉬어서, 사람들이 나보고 감기에 걸렸냐고 물어봤다.
침을 삼킬 때마다 따끔거려서, 물을 마시지만 해결되지는 않았다.
손가락을 넣고 토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손등에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누가 알아차릴세라 손을 가리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부작용들이 생기니 덜컥 겁이 났다. 계속 토하는 걸 반복하면 역류성 식도염이 생기고 심각하면 암이 생긴다는 것도 알았다. 토하는 건 분명하게 잘못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먹을 걸 게워내는 행위로 살이 덜 찐다는 심적 위안이 그 행동을 멈출 수 없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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