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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Jan 18. 2020

ep9. 나는 아침마다 체중계에 오른다

내가 몇 킬로인지, 얼마나 먹었는지는 다이어트할 때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숫자로만 오늘의 나를 판단한다면 바로 다음 끼니가, 내일 몸무게가 두려워지고 덜먹거나 더 토하는 생활  혹은 나쁜 식이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생활을 무려 10년 가까이 가져갔고, 이 습관이 얼마나 저를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아는 것도, 알고 나서 고치는 것도





당신이 숫자 강박에 시달린다면,

무조건 했을 3가지




1. 체중계에 자주 올라간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부터  갔다. 최대한의 배출을 하고 체중계 위로 올라가려는 의도다. 당연히 옷을 입고 올라가는 건 반칙이다. 공복이고, 간밤에 부기도 빠진 하루 중 가장 가벼운 시간에 재는 체중이 가장 좋다. 보통은 가뿐한 마음으로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에 간다. 전날 기름진 걸 먹거나 자기 전에 떡이라도 한 조각 먹어서 눈금이 달라졌다면 아침은 거르거나 주스 한 잔으로 끝낸다 (허기가 져서 점심 먹기 전에 빵집이나 매점을 거쳐가긴 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일단 씻고 다시 체중계로 올라간다. 체중은 늘 아침과 다르다. 오늘 화장실은 잘 갔는지, 다리는  부어있는지 생각해본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다리 마사지도 좀 해본 뒤 다시 체중을 잰다. 그래도 아침보다 많이 차이가 나면 최근 식사 시간이 언제였는 지 확인해본다. 1시간 이내로 고형물 식사를 했다면 뱉어낼 수 있는지 화장실로 가본다. 그리고 체중을 또 재본다. 100g이라도 떨어지면 그제야 안심하고 다른 일들을 한다.




방학 땐 더 심하다. 인체의 신비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하는 듯하다. 물 한 모금 먹고 체중 재고, 과자 한 봉지 먹어보고 재고, 다이어트 댄스 따라 해 보고 쟀다. 주식하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변동 그래프에 눈을 못 떼듯이, 나는 실시간으로 무게를 재며 몸무게  덕후로 하루를 보냈다.




2. 칼로리와의 전쟁


대부분의 제조식품에는 영양정보가 적혀있다. 나는 20년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영양 성분을 살피면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우유는 칼슘, 콩은 단백질 이 정도의 상식만 있었을 뿐이었다.


호주에는 kcal이 아닌 kJ 단위로 에너지 양을 표기하는데, 대략 kcal에서 4.2를 곱하면 된다. 400KJ, 1000KJ이라고 써져있다고 엄청난 고칼로리 음식이 아닌 것이다.


칼로리가 무섭다고 느낀 건 시드니에서 서울로 돌아갈 즈음이었다. 사무실에서 매일 먹던 과자를 집에 들고 가고 싶어 슈퍼에 들렀다.


그리고 그 쿠키를 찾아냈고, 정말 우연히 본 영양 성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즐겨먹던 과자의 영양성분표

내가 무심코 먹던 쿠키 하나의 에너지가 무려 475KJ이었던 것이다!!!!!!


475 ÷ 4.2 =

113.095 kcal...


매일 쿠키를 5개에서 10개씩 먹었는데, 과자로만 이미 성인 여자 하루 권장 칼로리인 1500kcal를 위협하고 있었다.

시드니에서 살이 그냥 찐 게 아녔구나 (5개월간 8kg이 증량되었다)라는 걸 떠날 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집에 와서 살을 빼기로 한 그때부터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마시는 음료, 채소, 밥 종류는 물론 엄마가 요리하시는 채소, 생선, 고기 칼로리까지 따져가며 한 끼 섭취 칼로리를 500kcal로 맞추기로 했다.


칼로리가 표기된 음식은 맘 편하게 먹고, 그렇지 않은 음식은 먹는 게 두려웠다. 칼로리가 낮은 채소도 맘 놓고 먹다가 배가 부른 느낌이 들면 칼로리 과다 섭취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칼로리가 적힌 과자나 라면은  편하게 먹었다. 내가 정한 한 끼 500kcal보다 더 먹으면 다음 끼니는 거르거나 조금 먹으면 그만이었다.


맛이 아닌, 건강을 고려한 게 아닌 칼로리를 따져가며 식사하는 산술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살은 빠져갔지만, 숫자 불안, 집착은 점점 심해졌고 건강한 식사와는 멀어지는 듯했다.




3. 66보다 55가 좋아


옷을 살 때 이상한 고집이 생겼다. 살을 드러내는 건 창피하지만, 큰 옷을 입으면 더 뚱뚱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분명 66 사이즈가, M 사이즈가 내 사이즈임에도 꼭 55를 먼저 입어보고, 혹시 S가 맞진 않을까 확인했던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옷이 너무 작아 교환을 하거나 그냥 못 입는 채로 버려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허리 27인치 이상이 되는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퍼가 안 올라가도 꾸역꾸역 입으려고 했다. 28인치 바지가 맞음에도, 애써 아니라고 난 그렇게 살이 찌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60kg이 넘어도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으면,

난 살이 찐 게 아니라고, 뼈 무게가 좀 나간 거라고, 보기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거라고 합리화를 시켰던 것이다.


55kg 이하

허리는 26인치

상의는 S이나 55 사이즈


이런 내가 정한 미의 기준일 뿐인데

한 번 만들어진 숫자 강박은 철옹성처럼 무너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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