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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Mar 05. 2020

ep19. 다이어트 도와주며 돈벌기

꿩먹고 알먹고

연고가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가고 

운동만 하다 보니

마음이 편하다 못해 나른해지고 심지어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식사는 닭가슴살에 호밀 식빵 2조각을 채소와 곁들여 먹고 
심심하면 버스 타고 근처 바다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졸리면 낮잠 한 숨 자고

찌뿌둥하면 저녁 운동 한 번 더 가는 일상이었다. 


깨끗하게 먹다 보니 뇌도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먹어서 살찌면 어떡하지? 어떻게 게워내지? 어떻게 살 빼지?라는 생각이 사라지니, 
생각할 만한 주제가 없었다. 
(나는 오로지 다이어트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살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비워진 생각 주머니에는 
앞으로 내 미래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들로 채워졌다. 


어떤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할지, 
영주권이라는 건 나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커리어는 어떻게 쌓을지, 
경제 상황을 어떻게 더 좋아지게 할지 등 


진작에 이런 생각들을 했어야 하는데, 이제야 하려니 고민이 쏟아졌고, 하나씩 결론을 지어가야 했다.


 커리어는 어느 나라에서나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우선순위에서 영주권이 많이 중요하지 않았고, 꼭 호주일 필요도 없었다. 
더 큰 바람은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 배경이 같은 한국 사람을 만나 내 가족을 꾸리고 싶은 것이었다.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기로 했다.
바로 2주 뒤 출발하는 인천행 티켓을 끊었다. 
정리할 건 없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캐리어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다. 


다음으로 할 일은 직업을 찾는 일이었다. 
(두 달이나 쉬어서 통장 잔고도 넉넉지 않았기에, 집에서 뒹굴며 여유 있게 직장을 잡을 여유는 없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영어 유치원에  취업을 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교사로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폭식을 겪은 10년에 비교하면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피곤하고 바쁘면 운동을 미룰 것이고, 간편식을 찾을 것이고 살이 찌는 연결고리가 이어질 게 뻔했다. 



 난 운동 트레이너도 아니고, 영양학적인 지식도 없지만, 다이어트와 관련된 직업이 없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눈에 띈 공고가 하나 있었다. 

온라인 다이어트 코치 모집
학력, 경력보다는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충분한 지원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얼마 뒤 면접을 볼 의향을 묻는 답장이 왔다. 






 
귀국 이틀 뒤, 나는 면접을 보러 갔다. 


작은 스타트업 회사였는데, 조직이 커지고 있어 직원을 충원한다고 했다. 나의 직무는 다이어트를 원하는 회원들에게 온라인으로 식사 점검, 운동 점검을 해주는 것이었다. 전문 트레이너가 촬영한 영상들이 있었고, 영양학적으로도 기본적인 매뉴얼이 있기에 그것에 맞추어 회원을 관리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기본 매뉴얼이라는 a4용지 10장을 주곤, 1주일 뒤에 모의시험이 있을 예정이라며 간단하게 면접이 끝났다.  


 


 근무 조건만 보면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스타트업 회사에다가, 작은 월급만 보면, 이러려고 귀국했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뉴얼을 보는 순간, 다음 주 모의시험을 한 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뉴얼에는 왜 수분을 많이 마셔야 하는지, 잠은 잘 자야 하는지,  어떤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게 좋은 지 등 설명이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내가 왜 살이 쪘었는지, 다리가 부었었는지, 공복 운동은 왜 좋은 지 등 그 매뉴얼 안에 답이 있었다.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었더라면, 
이렇게 오래도록 잘못된 다이어트는 하지 않았을 텐데.. 
나처럼 긴 시간 낭비를 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다이어트가 될 수 있게 도움이 되고 싶다.
"





모의시험을 무사히 마쳤고, 
한국으로 귀국 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다이어트 코치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직업으로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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