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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Apr 01. 2020

ep29. 먹을 때 진짜 행복하세요?

건강하게 살겠다며 울면서 토하는 걸 멈춘 지 3년이 다 되어가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지도 2년이 지났다.



주변에서는 나를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일주일에 3-4일은 출근 전에 헬스장에 가는 게 일상이 되었고,
최근에는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며 방울토마토와 닭가슴살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겠다.



음식조절도 엄청 잘할 거고, 운동도 오래 해서 꽤나 건강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늘 식욕과 싸운다.  



밥이 보약이라지만,
직장에서 식사하는 것을 제외하면 밥은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먹는다.
빵과 초콜릿은 번갈아가면서 사 먹고,
편의점의 1+1이나 2+1은 그냥 못지 나치며,
자기 전에 늘 먹을 것을 한참 떠올리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든다.  
마음을 굳게 먹고 배달 어플을 지우지만,
슬그머니 또 깔고 주변 맛집 메뉴를 한참 탐색하는
또 다른 나를 관찰한다.
유튜브에 먹방 유투버의 이름들을 검색하며,
떡볶이, 빵, 챌린지 먹방 등을 감상하고 또 감상한다.





매 끼니마다 뭘 먹지에 대해 크고 작은 고민을 하고, 바로 떠올린 그 음식들은 늘

고칼로리이거나 고탄수화물 고지방이다.


그럼 '먹으면 안 된다', '뇌가 거짓 배고픔을 느끼는 거'라고 이성적으로 달래며 식욕을 겨우 눌러본다.


그러면 선택지는 세 개가 된다.


집에 있는 건강한 음식으로 마음을 고쳐먹거나

덜 몸에 나쁜 음식들로 대체하거나

식욕이 이기거나 ....



어쨌든 그 셋 중 하나의 결론이 나면


나는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메뉴 싸움은  피곤하다. 그러나 매번 양보가  안된다.


그러다 하나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했던가? 



오늘은 뭐 먹지?라고 물어봤을 때

닭가슴살이나 방울토마토의 맛이 그리웠던 적은 없는데 난 그것들을 늘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 음식들은 늘 건강하게 영양소를 채우기 위함이었지, 입맛을 돋우는 식사는 아닌데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건강하지만 늘 먹고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 쫄깃한 떡이나 꾸덕한 크림빵을 먹을 때는 행복한가?

사실 100%행복하다곤 할 수 없다

그 음식을 사는 순간부터 나는 죄책감을 가진다.

주체 못 하는 감정으로 빵을 산 것이기 때문에, 마스크를 내리고서라도 당장 먹어야한다.

당연히 집에 갈 때까지 음식이 온전히 보존 되질 못한다.

집에 도착했을 때 주머니속에 꼬불쳐진 음식 비닐만 본 적이 있는가? 굉장히 허탈하다.


식욕에 졌다는 패배감에,

살이 찔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제보다 조금 더 빵빵해진 배와 허벅지를 보며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는 실망감이 쏟아진다.  


난 먹는 걸 좋아하지만 먹을 때 불행했다.




그러다 며칠 전 '온전히 먹기'를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전히 먹기'란 무엇을 먹든, 먹는 시간에 음식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유튜브도 안 보고, 책도 안 읽고, 카톡 확인도 안 하고 정말 먹기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먹는지 시간을 록해보기로 했다.

식단은 일단 내 맘대로 먹고 싶은 빵과, 떡 그리고 우유를 준비했다.  (오는 길에 먹고 싶은 마음을 참아보려고 제일 신나는 음악을 귀에 꽂고 겨우 들어왔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은 점심식사. 찹쌀떡, 뺑 오 쇼콜라, 그리고 우유. 절대 다이어트 식단은 아니다.


사진을 찍은 시간은 12시 07분이었다. 그리고 음식에만 집중을 했다.

'찹쌀떡은 콩고물 주변에 콩이 있네'

'뺑오쇼콜라는 생각보다 달지 않네'

'겹겹이 쌓인 빵은 씹는 맛이 좋네'

'이 집 맛있네'


라고 생각하며 꼭꼭 씹어먹다 보니, 아쉬운 식사가 끝이 났다. (물론 길에서 먹고 나서 집에 오면 빈 봉지만 남아있는 것처럼 허탈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엔 음식들이 내 눈으로 사라지는 걸 다 봤으니까)

그리고 다 먹고 나서 시간을 확인해봤다.

12시 14분.
정성스럽게(?) 먹었는데 고작 7분밖에 걸리지 않았는 것에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길어봐야 7분 이라니.


메뉴를 고민하고 억누르고 결정해서 처절하게 얻어낸 음식 이거늘 세끼를 곱해봤자 내가 누리는 시간은 고작 21분 밖에 되질 못했다.



하루에 음식으로 행복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찰나의 먹는 순간을 길게 늘일 수는 없을까?

음식에 집중해서 온전히 먹는 연습하면 좀 괜찮아 질 것 같은데?  

 

오늘도 식욕과 식탐으로 잠 못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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