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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Jul 19. 2020

캡사이신한테 맞은 썰

잘못된 일탈


돌고 돌다 보면


플레인 맛이

오리지널 맛이

원조의 맛이

건강한 맛이


좋다는 건,



다른 맛에

혼쭐이 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일까



다이어터는 여러 가지 맛을 절제하고 살아간다.

달달
고소
상큼
매콤

특히 매운맛은 너무나 갈망하는 맛이지만 참는 것이다.



어제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고구마나 계란에

풀때기를 얹고

소금, 후추로 먹었을 텐데


지친 일주일을 매운맛으로 날려보고자

비빔국수 하나와 사이신 한통을 샀다.



국수를 삶고

채소를 넣고

양념장을 뿌린 뒤

캡사이신을 쭉 뿌리고 비벼서


(겁 없이)

한 입 먹는 순간


!

!

!



?

이상했다.


매운맛이 아닌 그냥 텁텁한 맛?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니

목구멍으로 얼얼함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초 뒤 매운맛이라기보다는 쓰라리기 시작했다.


이미 맵기로 유명한 신길동 매운 짬뽕으로

먹을 수 없는 매운맛이 존재함을

알고 있던 나는

이 비빔국수를 먹을 수 없다는 걸 판단했고

그대로 처리하기로 했다.


빨리 내린 결정이라 바로 해결될 줄 알았다.


오이 반 덩어리를,

시원한 물을,

혀가 식을까 치즈까지 혀에 붙여봤지만

매운 얼얼한 기운은

이미 내장을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목은 아프지 않았지만,

상처 난 부위에 물파스를 바를듯한 화기가 배를 감쌌다


침대에 누워야 했지만 침대에 갈 수 없었다.

부엌에 있던 그 자리에 누워버렸고

창자는 꼬이는 듯했다.

식은땀은 흐르는데

소리도 못 지르겠고

뭘 해야 할지 판단은 안서는 고통..


한참을 데굴데굴 굴렀던 것 같다

토해야 하나

119를 불러야 하나

참기 어려운 복통도 지나갈 거라고

엄청난 자기 암시를 할 때쯤


몸에서 뱉어내라는 신호가 왔다.

겨우 잠재웠던 식도를 타고 화기가 올라왔지만,

토하고 나니

입술만 좀 얼얼할 뿐이었다.

죽을 것 같더니 음식을 게워내니 또 멀쩡했다.


정신 차리고 거실을 보는데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한눈에 보였다.




살기를 띤 캡사이신 국수, 치즈 비닐, 물 뚜껑, 

여러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픈 것들은

곧바로 치우고 눈에서 없애 버렸다







얼음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니

못 먹은 저녁 식사가 생각나

먹던 대로 

오늘 저녁도 샐러드나 먹기로 했다







캡사이신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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