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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 주세요!

사춘기 아이와 친밀감을 높이는 방법

by 하빛선

아는 지인분 중에서 자녀들과 사이가 유독 좋았던 분이 있었다. 개미와 밤톨이가 어렸을 때 그분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셨다.

"아이들이 다 성장해서도 부모와 같이 침대에서 뒹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있다면 그건 아이들을 잘 키운 거예요. 부모와 그 정도의 친밀감이 있는 아이들은 세상적에서 큰 성공은 못해도, 세상을 잘 살아가는 아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부부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말도 바로 아이들을 수시로 안아주라는 말이다.


당연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항상 안고, 업고, 비비고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점점 스킨십이 뜸해진다. 특히 아빠들은 더 빨리 아이들과 멀어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들도 많겠지만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어떤 분은 딸에게 허그를 해 주려고 하자, 딸이 징그럽다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떤 분은 그동안 스킨십을 소홀히 하다가 부부학교에 다녀온 후 아이를 안아주려고 하자 아이가 '왜 이제 와서 그러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바쁘게 살다 보면 이것조차도 놓치고 살 때가 많다. 나는 충분히 안아줬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안아주기는 언제나 의도적이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


나는 훌륭한 교육방법은 잘 모르지만, 안아주는 것쯤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포기하지 말고 한번 해 보자.

나는 그렇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주 스킨십을 자주 시도했었다. 틈만 나면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침대에서 같이 책도 읽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었다. 여느 부모들처럼 똑같이 아이들에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도 문제는 청소년시기가 되면서 나타난다. 남자아이들은 부모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우리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그랬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안아주는 것도 건성으로 한다. 뽀뽀는 아주 비싸다.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마사지였다.

농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두 녀석은 키 크는 마사지를 해 준다고 하면 은근히 좋아한다. 나는 아침마다 덩치 큰 두 녀석의 등을 위아래로 문지르며 마사지를 해 주었다. 가끔 예쁘다고 엉덩이도 한 번씩 쳐주고 운동으로 뭉친 어깨도 주물러 준다. 마사지는 키도 크게 만들고 엄마의 손길도 느끼니 일석이조였다. 이 덕분인지 개미와 밤톨이는 둘 다 180센티가 훌쩍 넘는 키로 성장했다. 이런 엄마의 손맛이 나름 괜찮았는지, 아이들은 틈만 나면 마사지를 해 달라고 조른다. 마사지의 맛을 알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마사지를 해 주고 나서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기도를 해 준다. 손도 잡아 준다. 청소년 시기를 거의 그렇게 보내다 보니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아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쇼핑을 가는 일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개미는 휴가 때 집에 오면 틈만 나면 안아주려고 한다. "엄마, 휴가가 얼마 안 남았는데, 언제 또다시 만날 지 모르는데, 집에 있을 때라도 마음껏 안아줘야지." 하면서 오다가다 엄마를 안아준다. 가끔은 침대에 같이 누워 이야기도 나눈다. 엄마보다는 좀 덜하지만 남편도 여전히 아이를 안아준다.


사랑은 접촉이 있어야 한다. 아이와의 신체적 접촉은 중요하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열심히 잘한 것은 바로 안아주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도 엄마처럼 사람들을 잘 안아준다.


남편과의 관계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관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낮아진다. 신체접촉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7-10초 정도 가만히 안아줄 때 위로나 정서적 교감이 일어난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때, 인간관계에 있어 꼭 안아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을 갖고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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