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밤톨이
" 밤톨아, 제발 앞 머리 좀 자르자."
루마니아에 와서는 아이들 이발은 늘 내 차지였다. 미용실에 한번 갔다가 머리가 엉망이 된 적이 있은 후부터 아이들은 엄마미용실만 고집했다. 루마니아에 오기 전 혹시 필요할 것 같아서 사 가지고 온 이발기와 미용가위가 이렇게 오랜 시간 요긴하게 사용될지 미처 알지 못했다. 사실 미용을 배워본 적도 없고 남자머리를 잘라본 적도 없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달 우리 집 욕실을 미용실로 만든다.
머리를 자를 때가 되면 욕실은 전쟁터가 된다. 개미는 머리숱이 적고 불평이 별로 없어 설렁설렁 금방 자를 수 있지만, 밤톨이는 머리숱도 많고 미에 대한 기준이 나름 높아서 머리를 자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른쪽을 자르고 나면 왼쪽이 길다. 왼쪽을 다듬다 보면 오른쪽이 이상하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큰 차이도 없는데 밤톨이의 예리한 눈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이 안되나 보다.
나는 "괜찮다", 아이는 "아니다. 다시 해라." 이렇게 서로 팽팽한 기싸움을 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머리를 잘라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개미처럼 엄마가 잘라주는 대로 별 불평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집 멋쟁이 큰 언니는 머리를 자를 때마다 늘 울고 있었다. 앞 머리가 짧다고, 옆 머리가 삐뚤빼뚤하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마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머리를 자르기 전에 미리 유튜브에 나오는 '남자머리 예쁘게 자르는 법'을 시청한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 하려고 나름 진지하게 다가간다. 하지만, 워낙 머리숱도 많고 머리카락도 굵은 밤톨이의 머리를 자르다 보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는 너무 쉬워 보였는데 손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머리카락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금씩 자르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린다.
가장 큰 마찰을 일으키는 부분은 앞머리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7학년때부터 밤톨이는 머리모양에 부쩍 더 예민해졌다. 나는 앞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은데, 밤톨이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놔두기를 원했다.
방문도 활짝 열고 지내던 녀석이 이때쯤부터는 들어올 때 노크를 요구했다.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다.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계속 참새처럼 쫑알대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는 몰라.", 혹은 "엄마,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아?. 내가 더 잘 알아."라고 세상문제를 다 통달한 듯 퉁명스럽게 말한다.
도대체 엄마가 뭘 모르고 뭘 알려줘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딸 부잣집에서 자란 나는 밤톨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무관심하기로 했다.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면 아이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다. 다행히 개미가 공유해 주는 밤톨이의 학교생활을 대충 알고 있었고, 분기마다 열리는 학부모상담에서 아이의 학교생활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학교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밤톨이의 사춘기 시작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 어두운 시기가 시작되면서 어렸을 때처럼 다시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리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밤톨이는 내가 빤히 쳐다보는 걸 싫어한다. 외국에 살다 보니 사람들이 너무나도 빤히 쳐다보는 경험을 많이 한 탓이다.
그래서 앞머리로 눈과 마음을 감추고 고개를 숙이고 다닌 듯하다. 사춘기인지 아닌지 모르게 늘 생각 없이 명랑했던 개미와는 달리 예민한 밤톨이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눈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던 시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었다. 아이가 이 시기를 잘 견뎌내길 바랐다. 아들을 키워 본 경험도 없고, 더군다나 사춘기 남자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는 정보도 없었다. 남편은 그 시기에는 다 그렇다며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고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같은 남자라 그런가? 하지만, 우리부부가 자라왔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를 위해 엄마인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아이가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이와의 외출이었다. 엄마하고 그냥 나가자고 하면 대부분의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귀찮아한다.
나는 아이들과 한 명씩 쇼핑을 가기로 했다.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집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쇼핑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옷을 사면서 서로의 취향을 나눌 수 있고, 쇼핑 후 배고프니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물론 아이가 엄마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요즘 어떤 마음인지, 기분이 어떤지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옷을 좋아하는 밤톨이는 옷을 사준다고 하니 싫어도 따라나선다. 개미와 같이 갈 때도 있지만, 한 번은 개미와 한 번은 밤톨이와 같이 가기로 했다. 그렇게 둘이 쇼핑을 하다 보면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진다.(물론 쇼핑의 한도는 정해져 있다) 웃는 얼굴을 보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쇼핑을 하고 오면 아이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쇼핑을 다녀와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쇼핑으로 좋아진 기분을 타서 "밤톨아, 앞 머리 조금만 더 자를까? 엄마는 니 예쁜 눈이 보고 싶은데." 라고 제안한다. 밤톨이는 조금 갈등하다가 흔쾌히 "알았어. 그럼 아주 조금만 더 자를게."라고 수긍한다.
물론 잠시 후 너무 짧게 잘랐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기는 했지만, 어쨌든 조금 짧게 자르는 데 성공한 셈이다. ㅎㅎㅎ 엄마의 계략에 넘어간 것이다.
이렇게 생긴 쇼핑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가져갈 옷을 사기 위해 엄마랑 같이 쇼핑을 간다. 엄마와 함께 고른 옷을 입어 보고, 엄마가 오케이를 하면 옷을 구입한다. 엄마의 안목을 존중해 주는 것도 고맙다. 그리고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 자신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에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 줄 때면 좀 더 의젓해 진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이미 자라버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추억도 같이 더듬게 된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시간들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사춘기 때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것들이 큰 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잘 견뎌낸 자신을 대견해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학교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지만, 밤톨이는 집에만 오면 엄마한테 머리를 잘라달라고 조른다. 이제는 거의 20여 년을 사용해 오던 이발기도 많이 낡아 잘 되지도 않고, 가위도 많이 무뎌져서 자꾸 머리카락이 찝힌다. 그만큼 내 감각도 무뎌져 아이의 머리를 자르는 게 쉽지 않다.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추억 속에 있는 엄마미용실은 아이의 마음에 오래 남아있나 보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밤톨이의 머리를 잘라주며 이제 엄마미용실은 폐업을 선언했다.
엊그제 밤톨이에게 전화가 왔다. 최근 관심있는 여자아이가 생겼단다. 아이들은 관심 있는 여자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이야기해 준다. 사실 내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데이트해야 하니 보너스 용돈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용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엄마에게 편하게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는 것이 고맙다. 나는 개미와 밤톨이가 마마보이가 되는 것은 싫다. 물론 그러기엔 자신들의 주관이 너무 뚜렷한 아이들이니 걱정할 것도 없지만.
하지만, 힘들 때 고개 숙인 얼굴을 서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그런 엄마와 아들사이가 되고 싶다. 이제는 서로 얼굴을 바라 보며 웃을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