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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F라고?

내 삶의 관리자가 되는 법 배우기

by 하빛선

아이들이 7학년이 되면 학교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관리하던 시스템에서 과목별로 선생님이 달라지고 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각 과목 선생님의 교실로 찾아가야 한다. 또한 프로젝트 숙제가 많아진다. 어려운 과목들이 늘어난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동안 아이들은 또 하나를 배운다. 하지만, 사춘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아이가 이 변화를 어떻게 뚫고 나올 수 있을지 엄마는 걱정만 하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역시나 7학년이 되면서 밤톨이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춘기가 시작된 시기와도 맞물려서 그런지 뭔가 삐그덕거리는 느낌이었다.


"밤톨아, 성적표 나왔어?"

한 학기에 두세 번 정도 중간 점검으로 성적표를 보내준다. 6학년때까지는 항상 모든 과목이 A는 아니어도 한 두 개를 제외하고는 줄곧 A를 받았던 밤톨이의 얼굴이 시무룩하다. 엄마에게 내민 성적표에 F라는 알파벳이 선명하게 써져 있다. A와 B, 거기에 C까지도 섞여 있다. 역사과목이 F라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밤톨이를 쳐다보았다.

"엄마, 내 친구들도 다 F 받았어. 나만 받은 게 아냐."

"뭐? 친구들도 다 F라고? 어떻게 그래?"

"우리 반에서 미국친구 2명 빼고는 다 나처럼 F를 받았어."

아이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역사과목은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다. 학기마다 세계의 역사를 대륙별로 나누어 배우는데, 한 학기는 아시아 역사, 다른 한 학기는 미국의 역사, 또 다른 학기는 유럽의 역사 등 세계의 역사들을 공부한다. 어려운 단어들로 역사이야기가 빽빽하게 써져 있는 두툼한 책을 공부하자니 겨우 6학년을 마친 아이들에게는 조금 버거웠던 모양이다. 7학년이 되면서 유럽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는 유럽역사가 중국과 한국 아이들에게는 많이 낯설었나 보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반 아이들( 한 반이 8명 정도) 거의가 F라니, 아무래도 선생님의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밤톨이를 불러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톨아, 역사가 너무 어렵니? 그럼 엄마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과외라도 해 볼까?"

"아냐, 엄마. 이번에 역사에서 F를 안 맞은 미국친구는 엄마가 많이 도와줬대. 그래서 그 친구엄마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니까 그 친구엄마가 우리 F 맞은 친구들 모아서 역사공부 도와준다고 하셨어."

"그래? 정말 좋은 분이구나. 친구들을 위해 그렇게 도움이 주시다니."


자기 자식이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닌데,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을 도와주려는 그 엄마가 정말 고마웠다. 영어라는 장벽만 아니었으면 나라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언어가 다르다 보니 아이들 공부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정말 고마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 공부를 하고 나서 그다음 시험에서 아이들의 성적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몇 번의 공부로 어떻게 성적이 올랐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엄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역사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 좋은 팁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밤톨이는 이런 일을 통해

나태했던 공부에 긴장감을 더하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추락이 끝이 아니고 다시 오를 수 있는 길을 찾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씩 배워간다.


학기 초에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하나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의 수업과목을 쭉 훑어보니 낯선 과목이 하나 있었다. 바로 "Study Strategies"였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공부스킬을 가르쳐주는 과목이란다. 6학년때까지는 부모와 선생님들이 일일이 챙겨주었지만 중학교부터는 스스로 학습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 수업시간에는 공부시간, 과제하는 법, 그리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까지 도와준다.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이게 공부야?'라고

생각했는데, 중학교에 올라오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주도하에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과목이었다. '그래! 나도 이런 과목을 공부했으면 좀 더 공부를 잘했을 텐데' 싶었다. 나도 사춘기 때 밤톨이 같은 혼돈의 시기를 겪었던 게 생각이 났다. 공부하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 과목을 들으면서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아이가 계획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8학년부터는 성적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 사춘기와 새로운 환경과 많은 혼란 속에서 1년을 보낸 밤톨이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춘기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학교가 가르쳐 준 학습방식에 따라 삶의 방식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공부도 인생도 방법을 알면 조금 더 쉬울 것 같다. 우리는 그냥 열심히 하라는 말만 듣고 살았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게 해결해 나가는 방법까지 배웠다면 나도 지금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의 삶도 만족스럽고 감사하지만 너무 늦게 배운 것들이 많다.

개미와 밤톨이의 책상에는 언제나 작은 공책이 있다. 그 안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빼곡히 적어 놓은 메모들이 가득하다. 나도 새해가 되면 작은 공책을 하나 준비한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본다. 그리고 해결한 일들을 체크한다. 가끔은 다 해내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 일들을 다 해냈을 때는 마음이 뿌듯하다.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계획하고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대신 해 줄 수 없다.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실패도 인해 좌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며 어지러운 세상에서 늘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루마니아 개미와 밤톨이의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개미와 밤톨이는 이제 다 자라서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글들을 같이 읽으면서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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